아이들

아이를 키우면서- 거짓말

tosoony 2005. 4. 8. 00:19

 

제 목:아이를 키우면서- 거짓말

보낸이:문성준 (토순이 ) 2000-04-05 12:36 조회:23

 

아내의 직장이 멀어진 뒤로 아침마다 큰 아이의 아침 식사와 통학버스를 태워

보낸 지도 이제 벌써 6개월이 넘어섰다.

빠듯한 오전의 출근 시간 동안 나의 준비와 함께 아이를 챙겨야 하는 것은

정말로 신경이 곤두서고 정신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6살이 된 이후 녀석은 혼자서 가방을 챙겨넣을 줄도 알고

이런저런 심부름도 마음이 내키면 따라해 주기도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어린이집을 다니는 그 또래의 아이들 모두가 갖는 것이겠지만 우리 아이도

아침마다 자기 가방을 챙길 때면 전혀 쓸데없는 물건을 가져가려 한다.

예를 들면, 뭐 새로 사온 장난감이나 이런 저런 집안의 물건들을 가져가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 날이면 대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작은 다툼을 하기

마련이었다.

더 만져보겠다는 친구들의 요구와 그것을 막으려는 녀석 사이의 끊임없는

실랑이는 결국에 선생님의 중재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집에 와서 또 가지고 놀으라는

식으로 설득과 제안을 반복하지만 그것도 1분 1초가 아쉬운 출근 시간에는

정말 진땀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도 아이는 애엄마가 새로 사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달래가며 그러한 것들은 집에 와서 신나게 가져 놀아라

라고 다짐을 시켰다.

녀석은 고분고분하게 '예' 라고 대답을 했고, 서둘러 신발을 신겨

현관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평소와 같이 빠뜨린 것이 없는지 등에 멘 아이의 가방지퍼를

열어보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갑자기 '아이 하지 마' 라고 하면서 나의 손길을

뿌리쳤고 가방속에서는 예의 그 장난감이 나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바람에 나는 잠자코 다시 가방지퍼를

올려주고서 통학버스에 아이를 태워보냈다.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박이 녀석의 처음 거짓말이라는 데에서 오는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빠의 약점을 무이식적으로

활용했던 녀석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가 혼란스러웠다.

평소 녀석은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많은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줄줄이 떠들어대는

것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날 따라 퇴근이 늦었다.

아이는 평소 6시 경이면 도착하는데 허겁지겁 집앞에 도착하니 오후 5시

50분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했는데, 저쪽에서 아빠를 부르며 반갑게 달려오는 녀석의

소리가 들렸다.

그날 따라 통학버스도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부녀가 단 둘이 바깥에서 만났다는 것은 새삼 색다른 정겨움을 느끼게

했다.

'지영아, 우리 슈퍼가서 뭐 사올까?'

아이는 흥쾌히 대답을 했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슈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빠는 오늘 아침 지영이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안좋았어.'

그말을 막 하는 데 갑자기 아이가 울먹거리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조용히 타이르고 넘어가려던 것이었는데, 아이는 길에 서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었다.

아마 녀석도 아침에 저지른 작은 잘못이 마음에 크게 걸린 모양이었다.

겨우 달래 주고 다시 슈퍼로 향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아빠도 지영이처럼 아주 어렸을 때 지영이 할머니에게 거짓말했었단다.'

'아바도?'

녀석은 아빠도 어렸을 적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주 놀라운 모양이었다.

사실 나 역시 어렸을 적 고의든 선의든 간에 얼마나 여러 차례 부모에게 거짓말을

했던가..

10원짜리 과자를 먹기 위해, 친구들이 산 장난감을 갖기 위해,

또 학원을 가지 않기 위해...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부모도 얼마간 나의 거짓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아이들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설프고 단순하겠는가.

'그런데 아빠는 다음부터 거짓말 안하려고 했어.'

'왜?'

'하느님은 정직하고 착한 어린이를 좋아하시거든. 그리고 거짓말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속상하게 해.'

그날 이후 아이는 아침에 가방을 챙길 때면 나에게 꼭 묻곤 한다.

'아빠, 이 장난감 가져가도 돼요?'

그것도 내 앞으로 쪼르르 와서 아주 정중한 어투로 묻는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아이는 지나칠 정도로

형식을 갖추어 묻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작은 걱정도 든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데 내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이나 아닌지 하고

말이다.

먼 훗날 아이가 자라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느낄지, 그 때를 위해

작은 기억으로 남겨 두어야겠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