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화이트크리스마스

tosoony 2023. 12. 25. 23:06

12월 24일 아침,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는 아내의 말을 대하며 얼마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인지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참으로 좋아하겠구나 하고 미소가 번집니다.
지난 이틀간 이곳 대전에 뿌려진 눈을 대하면서도 이젠 얼마나 미끄러울까부터 생각이들고 차는 어떻게 눈청소를 해야 하나 걱정이 먼저 드는 저를 보며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고 떠올려 봅니다.

아마 1995년이었을 것 같네요.
첫 아이를 낳아 1년간 부모님께 양육을 부탁드린 탓에 여유있는 신혼 부부처럼 지내던 중 12월 24일 낮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성탄 때 시내 나간다는 건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압사를 각오하고 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들의 전유물인줄만 알고 지냈는데
그래도 그 해 우리 부부는 그게 도대체 어떤 기분인지 한 번은 꼭 느껴보자는 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당시 대전에서 소위 유일한 시내라고 알려져 있는 '은행동'이라는 곳을 나갔습니다.
어깨를 부딪치며 삼삼오오 재잘대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도 무언가 같은 설렘을 공유하는 것 같아 참으로 마음이 좋더군요.
사지도 않을 이런 저런 가게 물건도 만져보고 눈이 쌓여 차도 제대로 못다니는 길을 과감히 걸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서는 모든 음식점마다 만원이라며 돌아나오고 시간이 그렇게 흘러 배가 고프다보니 이게 뭐하는 건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밥먹는 것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니 이젠 눈이 쌓여 길가에 택시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1시간 가까이 차만 기다리며 동동거리다 결구 추위에 못이겨 집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시내에서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미끄러운 밤길을 어그적거리며 집까지 꽁꽁 얼어 도착하고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따스한 집에서 함께 보내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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