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교사로 임용되면서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외부 출장 연수였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원격연수 시스템도 없던 상황이라
작은 연수조차도 관내 출장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근로지원인이나 같이 동행해 줄 인력은 물론 장애인 콜택시조차 없던 상황이라
자연히 출장 연수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경력란에는 10년 가까이 연수 이수 실적이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2000년 모든 학교에 인터넷이 보급되고 가정에서 연수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서
시각장애인들도 편하게 각종 연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웹접근성을 무시한 채 시각적 화려함만을 강조해 만든 각종 연수원의 강의물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또다른 단절과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시도 교육청에서는 매년 원격연수 실적을 교사의 필수 근무실적으로 요구하고 있었습니다만
실제로 현장의 시각장애 교사들은 혼자의 힘으로 강의물을 실행하거나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일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2000년대 말 장차법의 제정과 웹접근성 지침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저는 연수를 들으러 갈 때마다 민원을 접수하는게 일상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몇 년 사이 국가기관이나 관련 산하 기관을 중심으로 변화가 느껴집니다.
불편한 플래시를 없애고 주요 링크에 속성을 입혀 키보드나 음성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만든 연수 사이트가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요며칠 집에서 원격연수를 듣고 있습니다.
한 달여 동안의 긴 연수 기간 동안 또다시 혼자의 힘으로 동작시키지 못하는 당황한 경험을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잠시.
모든 연수물이 시각장애인의 접근을 고려한 매끄러운 시스템을 대하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나 하나 무심코 넘어가는 시스템상의 작은 코드 하나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중요 권리를 보장하는 소중한 일임을
또 그것이 결국 나 자신과 우리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유니버셜한 사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코로나는 분명 국가적 재난이지만 그 덕에 어쩌면 우리는 사이버 사회와 원격 시스템 등 새로운 미래로 한 발 더 들어가는 기회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이 기회를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시작으로 삼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마지막으로 모범적인시스템 구축에 신경 써 주신 한국교원대학교 원격교육연수원측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