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사회가 보편화되고 국민 모두가 스마트폰을 휴대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삶의 성공을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첨단화된 정보가 발달할수록 장애인의 정보접근 소외가 심화되는 부작용이 확대되면서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속속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방송 소외계층의 방송 접근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방송 수신기 보급 사업을 들 수 있다. 장애인방송 수신기 보급 사업은 「방송법 제69조 제8항」에 따라 시청자 미디어 재단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12,000대 이상을 보급하고 있다. 2012년 이전에는 화면해설방송 수신기와 자막방송 수신기를 따로 보급하였으며, 2013년부터 자막·화면해설방송 수신기를 통합하여 시·청각장애인용 TV 형태로 보급하고 있다. 한편 방송법 제69조(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등)에 따르면 방송 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수어·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이하 "장애인방송"이라 한다)을 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 조항에 따라 지상파를 포함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정한 유료 방송 사업자는 화면해설과 수화 등 장애인 방송을 일정 비율 제작·보급하도록 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지상파는 대체로 전체 프로그램의 10%, 종편 등 일부 케이블 방송 사업자는 5%를 화면해설과 자막 방송으로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면해설의 경우 한국 시각장애인 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측에서 연간 약 4천여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오고 있다.
지난 18년간 제도적 확대와 기기 보급으로 이루어진 장애인방송 보급 사업을 통해 부족하지만 시각장애인들도 주요 드라마와 예능, 시사 교양 프로를 제한없이 감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서는 여러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산적해 있다.
첫째, 기기 보급의 형평성 문제를 들 수 있다. 현재 화면해설 수신기 보급 사업은 시청자 미디어 재단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데, 1~6급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소득 기준을 우선순위로 두어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현재는 시각장애 등급 상 화면을 보는 데 지장이 없는 경증 시각장애인에게도 저소득층이면 화면해설 수신기가 보급되고 있으며, 정작 화면을 볼 수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저소득층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화면해설 수신기 보급 기회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 수준 뿐 아니라 장애 정도를 우선시하여 보급하는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프로그램의 실시간 접근 기회의 확대가 시급하다. 현재 각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화면해설 방송은 대부분 정해진 편성률을 본방이 아닌 재방송으로 채우고 있다. 프로그램 자체를 시간을 두고 제작하지 못하여 여유있게 화면해설 제작팀에 제공하지 못하는 방송사의 현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화면해설로 제작된 재방송을 그것도 평일 낮시간에 몰아서 편성하거나, 심지어 그 달의 의무 편성률이 채워졌다는 이유로 10여회분의 드라마 도중 화면해설 제작을 중단시키는 등의 현 방송 실태는 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셋째, 화면해설 전달 시스템의 기술적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화면해설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각 가정에서 사용 중인 기존 TV의 음성다중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시청자 미디어 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화면해설 TV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부분의 가정이 IPTV 셋톱박스를 설치하거나 각 지역의 유선 케이블망에 가입하여 TV를 시청하고 있는 현실에서 실제로는 가정 내 화면해설 방송이 출력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방송사측과 IPTV를 제공하는 각 통신업체나 지역 유선 케이블망으로 방송을 받아오는 지역망 업체 사이의 기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실태를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 당사자는 물론 시청자 미디어 재단이나 각 방송사, 화면해설을 제작하고 있는 연합회 모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소한 국가적 사업으로 한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가 실제 당사자들 다수가 이용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면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또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장애인의 정보접근과 관련하여 장애인 화면해설 방송 사업에 관한 문제점과 개선 사항에 대해 간략히 제시하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2018 세계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내용으로 연설한 바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차별없이 포용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과 법률·제도적 정비를 통한 토대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더하여 장애인 당사자의 관심과 참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 수혜는 전혀 다른 이들이 가져가게 되고, 그로 인해 꼭 필요한 곳에 스여야 할 귀한 예산이 엉뚱한 곳에서 낭비됨으로써 전체 장애인에게 피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문명과 산업화의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정보화의 진보는 시각장애인의 닫힌 눈을 뜨게 해준 축복임에 틀림없다. 아무쪼록 우리 시각장애인 모두가 당당하게 이러한 축복을 함께 누리며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 2018년 12월 15일자 점자새소식 사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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