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넓은마을과 우리의 인터넷

tosoony 2014. 12. 17. 23:41

올해는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상용화된 지 2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1980년대 pc통신과 모뎀이라는 낯선 부품으로 사이버 세계를 체험한 이래 1990년대 후반 e-mail과 MS-DOS 기반의 Lynx를 통해 인터넷의 바다가 무엇인지 어슴프레 알게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시각장애인들도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담배값 크기의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의 바다를 넘나들게 되었다.

하지만 차별없는 공간으로 시작한 인터넷은 그동안 시각장애인에게 번번히 사이버의 장벽과 좌절을 맛보게 했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오늘날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학습 과정에서 반드시 접하는 통신망으로 한국 시각장애인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넓은마을'을 들곤 한다. '넓은마을'은 1990년대 후반 한국 장애인 재활공학센터에서 구축한 시각장애인용 사설 BBS로 개설 당시에는 전화 접속으로만 운영되다가 telnet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며, 2000년대 초 웹과 telnet이 연동되는 현재의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사이 '넓은마을'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대표 재활 및 각종 정보접근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telnet은 문자 중심의 서비스와 평면적인 텍스트 구성으로 스크린리더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에게 빠르고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는 데 최적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telnet은 인터넷 개발 초기에 텍스트만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프로토콜로 그래픽은 물론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는 전혀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이야기멀티'와 같은 telnet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넓은마을'에 접속하고 있으며, 웹으로 연동되는 '넓은마을' 사이트 이용을 꺼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러한 이용 편중 현상의 원인으로는 웹이라는 화면 구조의 복잡성과 그래픽, 동영상 등 다양한 요소로 채워진 인터넷 환경을 시각장애인이 음성만으로 손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물론 최근 몉 년 사이 웹접근성의 준수를 규정한 여러 법률이 시행되면서 상당수 인터넷 사이트들의 접근성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웹의 사용을 기피하고 '넓은마을'의 게시판과 몇몇 자료실 사용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장애인 정보접근 확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넓은마을' telnet 편중 문제와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활용 확대를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까?

우선 시각장애인이 거부감없이 인터넷을 쉽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학습 기회의 다양화가 요구된다. 정부의 지원 확대와 관련 교육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안인과 전혀 다른 인터페이스와 스크린리더 등의 문제로 일반 학원 등에서 학습이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의 정보화 교육의 특성상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컴퓨터 교육이나 특정 소프트웨어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맹학교의 교육이나 전국 주요 도시 시각장애인 복지관 등에 설치된 정보화교육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물론 최근 들어 인터넷 온라인 학습, 정보화진흥원의 방문강사 제도 등 일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역시 소수의 시각장애인만이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처음 컴퓨터를 접하는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시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선택적으로 학습할 수 있고 점자와 녹음자료는 물론 동영상 등 자신에게 적합한 매체로 쉽게 학습할 수 있는 교육방법의 개발이 시급하다.

다음으로 웹접근성 지침 준수에 대한 폭넓은 개선이 시급하다.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 전면 시행과 모바일 접근성 지침 제정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원하는 사이트 활용에 제한을 받거나 공공 사이트 접근 제한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사용성 평가 없이 형식적, 기계적으로 구축된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웹접근성 준수 모범 사이트로 버젓이 홍보되는 등 그 심각성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 시각장애인 연합회 등에서 별도의 전담 평가팀 부서를 상시 운영하며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음 고무적이라고 하겠다. 그밖에 일부 현실에 맞지 않거나 추상적인 접근성 지침에 대한 개선 작업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넓은마을' 사이트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넓은마을'은 2001년 필자가 근무하는 대전맹학교에서 당시 'XHOST'사를 통해 처음 개발 적용한 바 있는 telnet과 웹이 연동되는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여 구축된 사이트로 이후 약간의 시스템 개선을 거쳤다 하나 상당수는 당시의 노후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잦은 버그와 시스템 불안정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대전맹학교는 시스템 안정성과 보안의 취약성 등의 문제로 2012년 telnet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 운용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작업이 시급히 강구되었으면 한다.

또한 현행 '넓은마을' 게시판은 20여년전 telnet 방식에서 사용하던 목록과 전체 게시물 대상의 조회, 검색 등만을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소위 게시물 도배, 외부 게시물 복사, 특정 성향의 게시물 등록에 대한 회원간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 사이트나 SNS 등에서는 선호하는 글의 대한 좋아요 표시, 원하지 않는회원글에 대한 목록 차단하기, 링크를 통한 다른 사람의 게시물 공유, 카테고리별로 게시판 보기 등의 기능은 보편화된 지 오래다.

따라서 새롭게 인터넷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다양한 기능을 '넓은마을' 웹 사이트에도 저굥하여 시각장애인으로 하여금 웹에 대한 편리성과 가치를 체감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보안과 안정성 및 기능 구현에 어려움이 있는 telnet 서비스의 사용을 줄여나가도록 하는 노력이 강구되어야겠다.

 

1995년 음성카드인 '가라사대'와 Lynx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의 게시물을 처음 접하던 날의 필자가 받은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기사를 터치하는 세상에 있다. 문명과 산업화의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정보화의 진보는 시각장애인의 닫힌 눈을 뜨게 해준 축복임에 틀림없다. 아무쪼록 우리 시각장애인 모두가 이러한 축복을 함께 누리며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 브레일타임즈 2014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