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한 때

tosoony 2014. 3. 5. 23:53

새해가 접어들면서 매스컴에는 우리나라가 복지예산 100조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보도로 장식되었다. 실제로 과거 몇 년 사이 행해진 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과 활동지원인제도, 보조기기 지원 사업 등은 과거에 비해 장애인 복지정책이 양적으로 진일보한 고무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또다른 기사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서 접하는 장애인 개개인의 복지에 대한 체감 만족도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한다.

통합이란 인종적, 종교적, 신체적, 경제적 또는 다른 중요한 특징에서 차이가 있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기회의 균등과 법률적 평등에 바탕을 둔 상호적인 포용을 말하며,장애인의 가장 큰 바램은 같은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통합되어 생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통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과 장애인의 바램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행해지는 법률 제정과 접근성 확보 정책들을 살펴보면 장애인의 만족도가 낮을 수 밖에 없음을 체감하게 되는데, 그 중 필자가 접한 몇 가지 사례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장애인 편의시설이 가장 잘 갖추어져 관련 부처로부터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다는 한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당일 실내 복도에 설치된 선형블록이 출구나 화장실이 아닌 특정 강의실로 어지럽게 이어지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설된 점자블록이 버튼 아래가 아닌 출입문 주위에 불규칙적으로 설치된 탓에 한참을 헤매야 했다.

또한 2009년 이후 주요 횡단보도에 설치되고 있는 음향신호기는 개정된 경찰청 설치기준을 준수해야 함에도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상당수 음향신호기는 아직도 건널목의 방향과 주요 지점을 음성으로 안내하지 않거나 귀에 거슬리는 음향을 송출하고 있다.

이밖에도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 의무 시행에 따라 개편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와 스마트폰용 어플의 접근성은 홍보 안내 문구와 달리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원하는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한편 이러한 혼란은 민간 차원의 사업에서도 빈번히 나타나는데, 점형의 크기와 배열 기준을 벗어나 가전제품과 식품 표면의 조악하게 양각된 점자, 아파트 1층 현관 또는 전자제품 표면에 부착된 터치패드용 숫자판 등은 의도와 달리 장애인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저해하는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세 가지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와 기업의 전문성없는 전시 행정과 구색맞추기식 정책을 일소해야 한다. 점자블록은 없는 것보다 설치되는 것이 좋겠지만 원칙을 지키지 못한 설치는 오히려 시각장애인의 보행중 사고의 위험을 높일 뿐이며, 날림으로 가설된 음향신호기 역시 잦은 고장에 따른 예산 낭비와 시각장애인의 통행을 방해할 뿐이다. 또한 민간기업의 제품에 양각된 부정확한 점자는 오히려 기업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역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체의 면밀한 현장조사와 함께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공식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생활 친화적인 시설, 제품의 접근성에 대한 면밀한 표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제정된 편의시설 기준과 웹(모바일) 접근성 지침 등은 제정 과정에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완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주요 가전제품과 의약품, 위험물, 터치패드 등 장애인이 필수적으로 접해야 할 접근성에 대한 기준은 시급히 제정되거나 보강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대표 시각장애인 기관을 중심으로 시각장애인용 촉지도, 가전제품의 접근성에 대한 지침 제정 작업과 포럼 개최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사례라 할 수 있으며, 향후 관련 전문가 인력풀 구성과 참여를 통한 지침 제정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문제점은 장애인 본인의 사용중 불편함과 모순점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제시와 개선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주인없이 표류하는 정책으로 일부 업체의 배만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자가 현장에서 수 차례 접한 업체 관계자들은 자신이 가설한 점자블록이나 음향신호기와 관련해 장애인들로부터 문제점에 대한 시정 지적을 들은 바가 없었다는 답을 들은 바 있다.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장애인 관련 접근성 관련 정책과 사업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간략히 적어보았다.

얼마 전 일선 학교 현장에 근무하는 시각장애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정부와 일선 교육청에 장애인 공무원 업무 지원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와 그에 따라 관련 부처에서 개선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야말로 필자가 오늘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아무쪼록 그들의 노력과 참여에 박수를 보내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한다.

 

- 브레일타임즈 2014년 2월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