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용카드를 재발급받을 때였다.
상담사가 멤버십 서비스를 소개하며 무료 서비스라며 3개월간 신용지킴이 서비스를 들어보란다.
내 허락없이 휴대폰, 인터넷, 은행 신용 조회 등이 발생할 때 휴대폰 문자와 이메일로 그 내역을 통보해주는 서비스라는데 공짜란 말에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던 것 같다.
이후 3개월 뒤부터 300원의 수수료가 나가기 시작했지만 귀찮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 덕에 은행 대출을 연장하거나 까먹은 인터넷 비번 고치려고 실명인증 할 때마다 꼬박꼬박 통보가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금요일, 낯선 실명인증 발생 이메일이 한 통 내게 배달되었다.
이상한 건 은행 대출 연장도, 인터넷 접속도 전혀 한 적이 없음에도 본인 실명 인증이 발생했다는 것.
이메일에 첨부된 링크를 따라 추적해 들어가보니 ㅎ 보험회사에서 내 이름으로 몇시 몇 분에 본인 확인을 해 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보험회사는 처음 보는 회사였다.
드디어 나도 한 건 낚였구나라는 생각에 이걸 어떻게 잡아서 본 때를 보일 것인지 주말 내내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고민 고민을 했다.
월요일, 일단 문제의 보험회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실제 운영 중인 회사라는 것과 고객센터 번호를 알아내 최소한 사기성 무명 회사는 아님을 알아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상담사를 바꾸어 달라고 한 후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상담사는 당연하다는 듯 내 주민번호를 ars로 넣어달란다.
거래도 안 하는데 정보가 있을 수 있겠냐는 말에도 확인 절차라 어쩔 수 없다나.
중요한 건 내 정보를 보고 상담사는 내 이름을 호명했다는 것~~~ 즉 내 정보가 이 회사에 존재해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당황해하는 상담사는 잠시 시간이 걸린다며 조금 후 전화를 걸어줄테니 잠시 끊어달란다.
씩씩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리는데, 5분도 안되어 그쪽 상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담사 왈,
"혹시 아무개 씨를 아시나요?"
"네? 그 사람이라면 평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굴지의 대형 ㅅ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우리집 보험 가입을 몇 차례한 설계사인데요... 그 사람과 그쪽 보험회사와 무슨 관계가 있죠?"
이후 상담사의 변은 이러했다.
그 설계사는 ㅅ 보험회사 말고도 자기네 회사 보험상품도 곁다리로 취급하는 설계사인데, 그 날 내 정보를 갖고 본인 인증을 한 것이라며 사전에 내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냐고 한다.
당연히 동의를 구했다면 내가 이럴 수 있겠냐고 하자 매우 당황해하며 주의를 주고 내게 전화로 사과를 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문제의 설계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주변에 사람들도 있고 감정 조절이 안될 것 같아 바쁘다고 나중에 전화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그 쪽에서 답이 왔다. 좋은 상품이 있어 내게 소개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라나...
동료들과 식사 모임을 하러 나가는 길이라 꼴도 보기 싫어 문자로, 믿고 보험 가입 관리 등을 맡겨 왔는데 그런 짓을 한 데 매우 실망했다며 답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는 그런 거 한 적 없는데요."
어이가 없었다.
분명 이 사람은 내가 본인 인증 통보 서비스에 가입된 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어이가 없지만 그간 상황과 내가 그런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자로 알렸다.
그제서야 조금 후 죄송을 연신 반복하는 사과 문자가 왔고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 이 상황을 글로 적는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 중 상당수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처럼 본인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 의해서 본인 인증과 정보 조회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쉽게 가입하는 홈페이지 관리자, 보험 설계사라며 친절하게 서류 뭉치를 받아가는 사람들, 휴대폰 사겠다며 손쉽게 적어서 내미는 서류 등등.
어쩌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정보와 신용 상태 등을 웃으면서 뒤져보고 이리 저리 재고 있을지 상상해보라.
그 문제의 설계사는 설마 내가 그런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중 이런 서비스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나 생각해 보면 오늘 너무나 아찔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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