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씩 들르는 집근처 '미용실 언니(속칭들 부르는);가 있다.
30대 중반의 야무진 외모에 소위 시다라고 부르는 여자 직원의 눈물을 쏙빼놓기 일쑤라는 그녀.
3년전 우연하게 찾은 미용실에서 만난 그녀의 프로가 느껴지는 손놀림과 손님을 대하는 철저하고 상냥한 느낌에 우리 가족은 습관처럼 드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우리 부부의 직장과 가정상황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녀는 어느날 뜻밖에 자신의 어린 딸아이가 심한 장애가 있다는 것과 아직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아볼 엄두도 없이 가슴아픈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속얘기를 꺼내 놓았다.
3~4살이 넘도록 심한 경기로 장애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교육이나 치료조차 받아 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다는 그녀에게 우리는 왠지 선뜻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철저하기만 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여러 얘기를 꺼내놓기 조심스러웠고, 무엇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가 적잖이 전해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순간 소위 특수교사라면서 그러한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만족시킬 정답과 같은 교육기관에 대해 자신있게 추천할 만한 곳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얼마 전, 평소처럼 아내가 커트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하던 중 그녀가 돌연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가게사람들은 그녀의 갑작스런 사직에 대해 얘기를 하기 꺼려했고, 우리는 그런 속에서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오늘도 새 정부는 복지예산이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활동보조가 누구누구에게 더 많이 제공될 것인지에 대해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TV에서는 장애라는 악조건을 딛고 무엇 무엇을 해낸 불굴의 승리자에 대해 기사를 쏟아낸다.
그럼에도 장애아를 둔 엄마의 피눈물이 마르지 못하고, 아이의 장애에 맞는 제대로 맡겨 볼 만한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여전히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오늘 과연 어떤 장애인을 원하는가?
장애는 이러이러한 규격에 꼭 맞아야 하고, 때로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많아서 스스로의 악착같은 힘으로 경기도 좀 나가주며, 대학에 가거나 컴퓨터 게임도 좀 잘하는 탈랜트 장애인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나머지...
자기 자신을 보호할 능력도 없이 여러 장애를 갖고 있고, 신문지상에 올려질 많한 뉴스거리도 가지지 못한 압도적으로 많은 이 나라 장애인은 여전히 음지에 가려진 채 그림자와 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장애아를 가진 것에 대해서 제3자들이 억지로 행복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이웃의 어머니들이 그림자가 아닌 양지에서 교육을 받고 우리처럼 평범의 삶의 의미를 누릴 권리만은 가질, 그런 날은 과연 어느 때야 올까..
주말 내내 자꾸만 그녀 생각이 떠오른다.
부디 우리의 '미용실 언니'가 다른 곳에서라도 웃으며 행복하게 다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