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출근거리가 매일 왕복 80km를 넘는 탓에 차의 마모가 심해 자주 부품을 갈곤 해왔지만 결국 8년여만에 벼르고별러 얼마전 차를 새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동안 편의기능도 늘어나고 성능도 좋아진 새 차에 가족 모두 좋아하는 눈치였고 마침 아내가 방학 기간이라며 출근을 태워주겠다는 말에 반색하며 차에 올랐다.
마침 학교 졸업식날 총괄 진행을 맡은 터에 서둘러 가야겠다는 마음에 나선 길이었는데얼마 후 4거리에 정차한 순간 갑자기 쿵 하는작음 진동이 밀려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라하며 뒤로 돌아본 아내가 어이없어 하며 길가로 차를 세운다.
충격의 원인은 뒤에서 대기하던 승용차가 브레이크를 덜 밟아 차가 밀리면서 우리 범퍼와 부딛친 것...
곧이어 차에서 내린 아내와 어떤 중년 남자와의 말소리가 차창밖으로 들린다.
다행히 신호등 정차 중에 일어난 일이라 범퍼에 작은 긁힘 자욱만 남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한사코 어디 다친 데는 없냐, 죄송하다란 말보다는 아내에게 별 거 아니라는 둥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반복해서 변명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식장 준비에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탓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뒤로 돌아가 몇마디를 하자 그제서야 그 남자는 나를 보고서 죄송하다, 문제있으면 연락해 달라며 주섬주섬 서류 한 켠을 찢어 연락처를 적어 우리 부부에게 건네주었다.
학교로 들어서면서 아내는 그 남자가 자신이 여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고압적으로 대했다며 내가 내리고 나서야 당황한 표정을 짓더라며 괘씸해하는 눈치다.
별 거 아니니 그냥 액댐하는 셈치고 넘어가자고 말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인지.
그러면서 딱 20년 전 우리 부부의 첫 차 시승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1993년 장애인 남편을 둔 아내의 통근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나의 입사에 맞춰 무엇보다 장애인용 승용차 구입을 위해 애를 쓰셨고 그 해 여름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소형 차를 장만해 주셨다.
아내는 평소 차 운전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용감하게도 무사히 운전면허와 필드 운전연습 수강까지 통과했고 그 주 주말 오후를 기해 마침내 단 둘이 차를 몰고 길을 나서는 용단을 내렸다.
그러나 쌩쌩 달리는 옆 차선의 차들과 조금만 머뭇거려도 빵빵거리는 차들의 위협에 아내는 의기소침해 핸들을 제대로 움직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특히 차선을 바꾸지 못한 아내는 결국 한도 끝도 없이 직선 도로 2차선만을 기어가듯이 가야 했다.
그러던 중 앞 차 하나가 머뭇거리더니 정차를 했고 사람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당황한 아내는 추월도 못하고 더 이상 가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만 브레이크를 놓쳐 앞 차의 범퍼를 살짝 박고야 말았다.
앞 우리 두 사람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얼른 차에서 내렸고 그들에게 연신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범퍼 손상은 이번의 우리 차가 당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당황했고 결국 시키지도 않은 10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큰 액수를 죄송함의 표시로 주고서야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운전을 한 지 20년이된 아내는 무사고에 한 손으로 핸들을 조작하고 좁은 공간에서 칼주차를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신속하게 할 줄 아는 자칭 운전의 명인(?)이 되었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우리 부부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곤 한다.
그리고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난다.
20년전 남자가 조수석에 탄 채 여자가 운전하는 것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무시하는 것은 거의 없어졌지만 지금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며...
외모와 생김새, 약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큰소리부터 치려 하는 우리 나라의 문화는 언제나 고쳐질 수 있을지...
그나저나 이번주말에는 아내를졸라 새 차 엔진을 테스트할 겸 드라이브나 해보자고 해야겠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