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곁에 있던 몇몇 맹인대학생 선배가 하는 것을 보며 덩달아 큰맘 먹고 산 xt라는 거대한 쇠붙이, 컴퓨터.
그후 매일밤을 지새며 빠져살다시피 한 나는 방학을 맞아 서울집으로 오면서 그 놈을 도저히 두 달여 동안 떼놓고 올 수가 없었다. 결국 이삿짐 싸는 것도 아닌 것이, 트럭 한 대 도움도 없이, 무식하게 크기만 한 그 놈을 모니터와 본체 키보드 각각 박스에 넣고 신주단지처럼 꼭꼭 포장해서 지금의 아내와 함께 달랑 둘이서 정말로 낑낑거리며 고속버스에 실어 넣었다.
그러고도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찻속에서 혹여 충격으로 고장이나 나지 않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졸지도 못하면서 3시간을 보냈다.
그런 생활을 몇 학기인가 반복하고, 몇 년후 서울 부모님댁에도 286 at가 생기고 나서야 그 무식한 짓을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인터넷은 당연히 생각조차 못했을 뿐 아니라 ketel 무료 서비스가 시행되고 몇몇 시범 서비스가 저속의 전화망으로 이루어진 데 감격하며 부모님 몰래 전화선을 뽑아 놓고 해보던 pc통신..
1994년이었던가, 컴퓨터 지도를 하며 몇몇 학생에게 pc통신을 가르쳐 주었다가 몇 달 뒤 고지서를 들고 달려온 학부모님.
자기 집 전화비가 15만원이 나왔다면서 기겁하는 학부모에게 애써 설명을 하고 돌려보내고, 곧이어 교장선생님께 쓸데없는 거 가르치지 말라는 일장 훈계를 들었던 웃지못할 기억도 난다.
4, 5년 전엔가 대학 서클 계모임 때 와 보고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함께 찾은 수안보.
방학이라 하여 집에서 쉬기만 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순간 순간 걸려오는 공문 처리, 잡무 해결 전화에 도통 맘이 복잡하기만 하다.
결국 이런저런 장비를 챙겨서 약속된 가족 여행을 떠날 수 밖에..
그래도 모처럼 폐속 깊이 느껴보는 신선한 산자락의 공기와 행복해하는 아이들 모습에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깊은 밤으로 향하는 이 시간 나는 작은 리조트 방 한 켠에서 가지고 온 조그만 울트라 신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 두고 아이폰의 핫스팟을 켠 후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물론 조그만 노트북이라 하여 되지 못하는 기능은 전혀 없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센스리더도 끊기지 않을 뿐더러 pc가 수행해야 할 모든 기능이 다 가능하다..
잠시 페북을 둘러본 다음 다시 열어두고 중단한 엑셀 계산을 마무리지어야 할 판이다.
20여년이 지난 사이에 엄청나게 변한 세상.
그 가운데서도 컴퓨터와 공학에서 이뤄낸 변화는 무심한 한 장애인의 생활을 이렇게나 변모시켰다...
수안보 한화리조트에서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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