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할 일도 많고 고달픈 시각장애인의 하루

tosoony 2011. 11. 8. 02:14

매일 음향신호등에 의지해 출근하다보니 자주 고장나고 바꿔치기하는 음향신호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접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집앞 신호등 멘트와 목소리가 달라졌다. 전에 듣던 "왼쪽 횡단보도에 녹색 불이 켜졌습니다. ~~~"라는 멘트가 사라지고 불이 들어왔다는 소리만 한다.

일반 비장애인들이야 뭐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왼쪽 횡단보도라는 의미는 신호등이 가설된 기둥 왼쪽편에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 라인이 그어져 있으니 그쪽에 서있다가 건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없거나 반대로 알려줄 경우 횡단보도 선이 아닌 신호등 기둥의 반대편에 서서 건너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새로 가설된 제품에는 그 부분이 없이 곧바로 불이 켜졌다는 소리만 나오니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건너는 위치는 인도가 낮아지고 있어 알 수도 있음)

문득 업자들이 제품을 가설할 때 음성 멘트 때문에 방향을 따지기 귀찮고 번거로운 비용을 줄이기 위한 편의적인 방편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근한 후에 내가 평소 잘 알고 있던 경기도의 한 음향신호기 회사분께 전화를 드렸다.

혹시 이 음성멘트에 대한 법규상의 강제 조항이 없는지를 물어보았고, 그 분으로부터 경찰청 규정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내용에는 음향신호기에 들어가는 음성 멘트에는 불이 켜지는 것과 함께 시각장애인이 건너는 방향 등 방향정위를 알 수 있는 멘트를 넣도록 되어 있었다.

가령, 맞은편에 커다란 중학교가 있다면 "** 중학교 방향 횡단보도입니다.~~" 이런 식이리라.

그런데 새로 가설된 제품임에도 그나마 있던 방향 제시 멘트를 없애고 두리뭉실하게 불이 켜지는 정보만을 담은 신호등으로 바뀐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로부터 자문을 듣고 이렇게나 창의적으로 멘트를 바꾸는 것일까?

정히 돈이 많이 들어 특정 지역의 위치를 음성에 넣을 수 없다면 기존과 같이 횡단보도 위치만이라도 담은 음성을 살려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였던가.

새로 생긴 전철을 타고 춘천에 내려 대로변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늘 낯선 도시나 시내를 걸을라치면 음향 리모컨을 눌러보는 습관에 따라 눌러 보았다.

그 순간 반가운 음성 멘트가 들리는 것을 보고 춘천도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길을 건너라는 멘트와 함께 들리는 신호음이 엉뚱하게도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가늘고 높은 데시벨의 휘파람 소리는 차량의 엔진음에 파묻혀 도통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듣는 이들의 청각을 자극해 짜증을 돋구고 있었다.

이런 제품이 가설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혹시 관광지의 특성상 일부러 바꾼 것인지, 아니면 역시 업자의 창의적이고 무관심한 주위 관심 덕에 맘대로 고친 것인지 한심스럽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전국에 마구잡이로 설치되고 고장나 회수되기 일쑤인 국가 세금 뭉치는 누가 책임을 질까...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들의 위치는 어떠해야 하는지 끝이 없는 이 다람쥐 채바퀴식의 싸움은 언제나 끝날 수 있을 것인지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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