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돋보기

MBC 9시 뉴스의 어울리지 않는 두가지 뉴스

tosoony 2010. 1. 6. 23:25

어릴 적 새해 눈이 내리면 어르신들은 서설이라며 좋은 징조라고 했습니다.

또 겨울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는 해는 땅속의 병균도 다 죽고 새롭게 새봄을 맞을 수 있어 길조라고도 하지요.

무엇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크나 큰 행복일 것입니다.

30여년 전 서울의 회색빛 변두리에서 살 즈음 아침 가득이 쌓인 눈속에 홈박 빠져 구르며 연탄재로 굴린 눈사람과 이런 저런 조각품을 만들고 하루가 다 가는 것도 몰랐던 그 시절, 하얀 눈은 정말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새해 첫 월요일 쏟아져내린 눈폭탄 속에 온 나라가 페닉 상태입니다.

제가 사는 이곳 대전의 혼란도 기록에 남을 만했습니다만 사 나흘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의 고통은 상상도 못할 토픽감이더군요.

하루가다르게 탄탄하게만 공고해지는 거대한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제 물리적인 영역으로뿐 아니라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서울이니까 모든 것이 가장 최신이고 편리하며 중심이 될 것이라는 그야말로 관습헌법상의 명실상부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서울이 30cm도 안되는 눈세례에 지금까지도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교통과 업무, 물류 마비속에서 비정상적인 혼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MBC 9시 뉴스는 무려 10여 꼭지 가까운 비중을 이 뉴스에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언제 이  천만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의 혼돈이 정상화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뉴스가 이채로웠습니다.

정부에서는 세종도시의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교육과학 도시로 변경하면서 대체 역할을 할 입주 대기업의 사례로 삼성 LED 공장 유치를 언론에 흘렸습니다.

이 나라의 랜드마크인 삼성, 그것도 요즘 한참 뜨는 LED 단지 유치는 사실 지자체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거래 조건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메가톤급 발표가 임박했다며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총리, 대통령의 멘트가 연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동시간에 이루어진 연이은  이 두가지 뉴스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연일 해결되지 못하는 눈폭탄 피해 사례의 경우 기본적인 원인은 기상재해라고 하겠지만 그 저변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만큼 기형적으로 과밀화된 오늘의 서울의 병폐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어려움과 문제를 몰라서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옷이 찢기고 몇 시간씩 걸어서 출근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울만이 그들의 직업적, 경제적, 문화적 요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아니 그곳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최소한의 그들의 요구를 보장해주지 않도록  이 나라의 시스템이 굳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정부, 관습헌법이라는 신조어까지 얻어가며 홍역을 겪고서 세워진 세종 신도시는 후임 정부 통수권자의 '백년지대계'라는 소신(?)에 따라 이제 원점에서부터 뒤엎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정부 여당에서 주장하는 여러 불합리한 점에 동의하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미 수 십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면서 진행된 세종 신도시 개발의 목적이 몇몇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 과거 정부가 특정 지역의 인심을 얻기 위한 조악한 정책의 소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별한다면, 우리들은 오늘 이순간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는 이러한 서울 시민들의 대혼란이 왜 반복되어야 하고,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바로 백년지대계의 하나인가에 대해 먼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정부는 지하철 편수를 더욱 늘리고, 행정력을 더욱 늘려 얼어붙은 눈을 치우고 또다시 변방의 신도시를 추가 개발하겠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치고 이러한 정책이 밑이 뚫린 독에부어대는 한 바가지의 물동이밖에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요..


오늘 천만명이 넘는 서울 국민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억울한 시간적 재정적 비용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고 백년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고통이라면 정부는 충청도의 작은 땅위에 어거지로 몇몇 기업체와 대학을 끌어다 앉히는 데 역량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전 서울을 포함한 국토의 고른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궁극적인 마스터플랜 개발에 통수권자와 장관들이 모여 머리를 싸매고 그 결과를 오늘 밤 뉴스에 보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 9시 뉴스를 볼 때야 우리는 통수권자의 진정성을 믿고 내일 아침 다시금 옷과 가방이 찢길 것을 각오하면서 출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시베리아보다도 추웠다는 한반도의 기상청 보도를 보며 우리 마음이 더 추웠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