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생활에서 대단위 아파트 생활로 옮겨가면서 겪게 되는 변화 중 하나는 단연 엄청난 광고 전단지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떼어내도 소용없고, 아파트 현관에 고가의 잠금 장치를 달아 1층에서부터 일일이 외부인 방문시 문을 두 번씩 열게 만들어도 대책없이 덕지덕지 붙여놓고 가는 것이 광고 전단지입니다.
하긴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때에 이런 것마저 못하게 만든다면 서민은 어떻게 살까 하며 그냥 잊고 지내기도 합니다.
또 사실 몇몇 신장개업 외식 광고 전단지는 꽤 쓸만하기도 하거든요.
지난 추석 명절이 시작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집 근처 대형 유통마트에서 두툼한 광고 전단지가 왔습니다.
물론 추석 명절을 맞아 엄청난 세일을 하니 방문해달라는 뭐 안봐도 알 것 같은 그런 내용이었죠.
그런데 한가지 다른 점은 동봉한 유인물 중에 조그만 쿠폰이 하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금 4000원이라고 씌어있는 할인 쿠폰은 예전에 자주 보던 무슨 무슨 물건을 살 때에 국한해서 할인해준다는 그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쿠폰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무엇을 사든지 쓸 수 있다는 제대로 된 쿠폰이었습니다.
추석 명절 전날까지만 유효하다는 단서가 붙은 것 말고는 아무런 조건이 없던 쿠폰을 보며 대형 마트마저 불황에 급하긴 급했나 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넘쳐나는 가짜 쿠폰에 무감각해진 가족들은 그 문제의 쿠폰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며칠 뒤 집안을 굴러다니는 문제의 쿠폰을 발견한 저는 얼른 지갑속에 그것을 고이 넣었습니다.
‘4000원이 어디야, 휴지가 몇 개고 아이들 아이스크림이 몇 개인데... 아까운줄 모른다니까..’
이런 푸념을 하며 내 언젠가 꼭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 며칠 뒤 마침내 명절 준비를 마무리하지 못한 아내가 근처 마트에서라도 장만을 해야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옳거니..’
나는 얼른 지갑을 들고 따라나섰습니다.
카트를 밀어주며 마트내를 다닐 때마다 느끼는 점은 왜이리 물건값이 비싼지, 조폐공사가 만원짜리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야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닌가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마침내 준비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물건들을 꺼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물건을 올리는 아내와 박코드를 찍어대는 계산 점원앞에 저는 당당히 지갑속 문제의 쿠폰을 꺼내 놓았습니다.
‘요것도 포함해서 계산해 주세요...’
아내는 어떻게 이걸 잊지 않고 가져왔냐며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점원도 으레 익숙하다는 듯이 전체 물건가에서 곧바로 4000원을 차감하더군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왕 내친 김에 확실하게 아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결재할 때마다 같이 내어놓는 마트 전용의 페밀리카드를 내어놓으며,
“이거 페밀리카드 안에 들어있는 포인트까지 합쳐서 계산해 주세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점원이 피식 웃으며 어색한 듯이 아까 건넨 쿠폰을 내보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포인튼데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한 주 넘게 지갑속에 넣어두고서 아껴보겠다며 보관한 쿠폰은 바로 우리 집 페밀리카드 속에 모으고 있었던 포인트 4000점이었다는 것을...
‘헉, 낚였다!!!’
몇 년째 지역에 있는 모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데요.
시각장애아 개론 과목을 강의하는 중에 어느 날 우리나라의 맹인 관련 속담이나 격언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는 문구가 나오더군요.
우연이나 생각지도 않은 횡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것을 가지고 좋아했다는 뭐 그런 경우에 쓰는 격언이지요.
제 딴에는아주 익숙한 속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강의를 듣는 요즘 학생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하더군요.
그런데 그 날 따라 적당한 예를 찾지 못해 흐지부지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진작에 오늘의 이 씁쓸한 경험을 했다면 아주 좋은 예가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결론은 하나, 업체의 상술에 낚이지 말자! 그것이었습니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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