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그저 바라기는

tosoony 2009. 12. 25. 19:58

한 해가 저문다.

길거리에서도 울리지 않는 캐롤은 스산함마저 더해준다.

아니, 차라리 솔직함이라 생각하고싶다.

이 음산한 거리에 탄생과 축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더 그리운지도 모를일이다.

며칠 남지 않은 세밑에서 또 하나의 진실공방을 지켜보고있다.

그녀가 어찌될지는 이미 시나리오가 있고 다음 대상이 누구라는 순서까지 있단다.

그게 성탄 전야의 한반도다.

그래서 아무도 성스러운 탄생이라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성스럽지 않으니 경배나 돌아봄은 없고 스산함만 있으며, 탄생이 없으니 죽음만 묻어난다.

아무리 경쾌한 캐롤이 울려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억지로 억지로 평화와 축복을 말해도 결코 실감나지 않으며 내것이라 여기지 못한다.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이며 천당과 지옥만큼 멀다.

아, 눈감고 돌아누우면 똑같다는 경지에 이른 분은 예외다.

난 올 한해 무엇을 했는가?

내 목소리는 얼마나 거짓에서 벗어났으며 내 몸짓은 얼마나 나쁘지 않았을까?

감히 진실과 선함을 말하지 못하니 그저 거짓과 악함만이라도 덜하였기를 바랠뿐이다.

밝아오는 새로운 한 해라고 해서 올해와 다를것 같지는 않다.

그저 바라기는 덜 나빠지고 덜 악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고 싶다.

질긴 놈이 살아남는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놈이 질기다고 말하지만, 단순히 살아 남는 그 연장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단순히 살아 남기를 원했다면 내일 태어난 그 머나먼 땅의 메시아도 그렇게 못박히지는 않았을것이다.

아니 그것을 원했다면 지금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것이며 춥복과 성스러움은 커녕 장삼이사로서 흩어지는 바람과 같았을것이다.

바람이다.

2천년을 거쳐 살아남은 바람이다.

태평양을 건너 뛰어 전해지는 바람이다.

왜 모래바람으로 머물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 우리 앞에 따스히 전해지는가 돌아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바라기는 정말 이 땅에 희망의 촛불이 모진 바람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 모진 광풍이 거치고 진정한 성탄이 본래의 뜻을 찾는 그날 그 탄생을 축복할 누군가가 있어야할것 아닌가?

성탄이 있어도 그를 그리는 촛불이 없다면 탄생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

촛불이 있어도 그리워할 무언가가 옳지 않다면 단순히 화학물질 덩어리에 불과할 일이다.

어둠을 사르는 촛불을 들고 진정한 생명을 찾는 그런 오늘과 내일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참생명으로 더 많은 어둠을 물리치는 내년이기를 원한다.

정말 살아있다는것이 고마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멋진 한 해였다는 감사와 경배의 글을 내년 이맘 때 꼭 쓰고 싶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바램이 바람처럼 부는 그 날을 꿈꾼다.

 

- 넓은마을 강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