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내 밑으로 집합

tosoony 2009. 6. 6. 21:18

어깨가 많이 아픕니다.

신경성이라고 하시는군요.

하지만 정말 어깨가 아프면 밥줄이 위협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구선수들도 그런 사람들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종범선수관련기사를 보았습니다.

내 밑으로 모두 공 주워가 내용입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기아선수단에서 경기전 몸을 푸는 데

흩어진 공과 배트를 정리하는 것은 오직 나이순으로 어린선수들만이 하는일이랍니다.

그러니 자연 몇 명만이 나와 이리뛰고 저리뛰었겠죠.

이를 본 이 종범선수가 집합을 건 겁니다.

그리고는 모두  정리를 하라고 한마디한거죠.

급기야 30대중반인 그러니까 이 종범보다 후배이지만  고참급의

선수까지 헐떡이며 그라운드에서 공을 주웠답니다.

이를 본 30대 초반의 선수가 애걸복걸하여 열외를 청하였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실을 어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 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모두가 붉었던 2002년 히딩크이야기입니다.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놀랬던 것이  가장 많이  뛴 박 지성이 훈련이 끝나도 뒷정리를

하는것은 물론 후보로 벤치를 지킨 선수들의 몫까지 하는것을 보았을 때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혹, 후배가 선배를 위해 아니면 청소는 당연히 후배들이 알아서 하는것이

예의라고 생각을 하시지는 않으신지요?

히딩크가 가장 먼저 손을 댄것이 바로 이 선후배문화였답니다.

다시 이  종범선수이이야기로 가겠습니다.

이 종범선수는 정말 야구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이지요.

타이거즈의 전략 절반이 이종범이란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김 응룡당시 감독께서 에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라는

한마디를 남기셔서 전국민의 패러디 대상이 되었을까요!!

이 종범 세글자로도 충분한 선수가 이종범선수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 밑으로 몽땅 공 주워하였다면 매우 실망입니다.

왜 훈련은 똑같이하고 뒷감당은 일부만 하여야할까요?

뒷처리를 하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어서는곤란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들은 프로선수입니다.

훈련을 보조할 사람이 분명 있어야겠지요.

열악한 한국프로야구단의 재정규모가 문제라면

모두가 그 뒷처리를 하는것이 기본입니다.

19세 신인부터 최고참 이종범은 물론 메이저리거출신인 최 희섭선숙까지 모두

해야할 일입니다.

걸음을 못걷는 선수정도가 예외이겠지요.

이런 이 종범선수의 내 밑으로 모두 공 주워가

내 밑으로 모두 촛불 꺼와 무엇이 다를까요?

내 밑으로 몽땅은 내 밑에선 어떠한 예외나 열외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내밑은 또 내 위와 내 밑을 분별하려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위이고 밑인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이런 문화를 우린 군사문화라 부릅니다.

모두가 하나의  명령에  복종하여야하고,

그 복종이 질서라고 따릅니다.

그 명령에  대한 평가는 나의 몫이 아닙니다.

오로지 역사가 평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지요.

 달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고 난 명령만을 따랐다고

주장하며 면죄부를 흔듭니다.

일면 타당합니다.

그러나 정말 명령에만 복종하면 우리네 책임은 전혀 발생하지 않을까요?

제발  어깨위에 있는 신체를

그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조금이라도 사용하여야할 것입니다.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좀 더 개인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네 한국인들은 좀 더 많이  개인을  챙겨야하는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얼개가 바로 질서이고 법입니다.

하지만 그 얼개가 누구에게는 헐렁하고 누구에게는  쪼여드는 압박이라면

지금은 다시 노예제가 있던 2천년전 일지도 모릅니다.

제발 생각이란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왜 저사람은 저런 소리를 할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십시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또 구해보십시오.

책에서도 구하고  대화를 통해서도 구해보십시오.

목사에게서도 구하고 스님들에게서도 구해보십시오.

노인에게서도 구하고 어린아이에게서도 구해보십시오.

그럴때 이런 구절을 잊지는 마십시오.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여라.

 다소 살벌한 이 소리는 이게 답이다라고 구하기를 그만두는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란 경구랍니다.

결론이라고 얻었던 그 사실에 대하여도 계속 회의하고 의심하라고 합니다.

안마만이 유일한 것이고 안마이외에는 모두 없다라고 주장하는 나를 돌아보십시오.

진정 내가 움켜쥐고 싶은것이 안마인지,

안마를 내세운 또다른 불법은 아닌지 돌아보아야합니다.

이 굴레는 각자 벗어나야 할것도 있고,

집단적으로 벗어날 것도 있을것입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세금을 깍아주는 정책에 당신이 돌려받을 세금이 만원이라면

과감히 그 정책을 저지시키는데 힘을 모으세요.

당신의 주머니에선 만원이 절약되지만

누군가의 주머니엔 억단위가 절약됩니다.

그렇게 비어버린 구천 구백 구십구만원을 채우기 위하여

당신을 위한  복지정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종범선수의 행동이 한국적 질서라는 포장을 달고 당연히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강요되어지기도 합니다.

이 틀속엔 승자만이 홀로이 독식하는 문화가 뿌리잡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종범선수처럼 되는 야구선수가 얼마나 존재할까요?

최고참에 올라가는 개개인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개개인을 중심으로하는 문화에 아무 저항감없이 무너지는

당신은 애처롭습니다.

오로지 만해 한 용운 스님이 복종이란 시에서 절대자를 향한 복종을

노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찬양은 너무 많습니다.

매주 반복됩니다.

죽은 신의 껍데기를 끌어앉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떠들기도 합니다.

신이 말한 대목중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외워 협박하고 돈을 뜯어냅니다.

거짓과 싸우라는 가르침은 잊어버립니다.

오로지 돈에 줄을 서지요.

이들도 내 밑으로 모두 집합에서 자유롭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에게 '내' 란 존재는 절대자임이 분명한데도

스스로가 절대자에 오릅니다.

그러니 집합을 하지않고 오히려 집합을 걸어버리는 거지요.

진리는 그들이 필요할 때만 잠시 아주 잠시 꺼내들여다 보고 다시 묻어버립니다.

선배와 후배란 존재가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보세요.

선후배란 카르텔이  존속되는것이 시각장애인인 당신에게 유리할지

매우 불리할지를 따져보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십시오.

제발 당신도 당신의 이익을 위하여 생각하고 움직이세요.

당신의 판단이  당신의 운명만을  움직인다면 다행이지만

 당신의 가족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몽땅   그 판단에 종속됩니다.

특목고를 보내지도  못할 당신이  특목고를 지지한다면 당신은 결국 당신 아이의 미래를

버리는게 됩니다.

어깨위에 있는 신체구조는 보고 듣고 먹고 냄새맡기 위하여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것이며 당신이란 존재의 중추이기도 합니다.

그 신체부위를 사용하세요.

단지 앵무새처럼  따라하지만 말고 독창적인 당신의 생각을

만들어보세요.

더 자유로운 세상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자유로움에는 내밑으로  집합이 없을것입니다.

내 밑이 없으니 내 위도 없겠지요


- 넓은마을 강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