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한다.
난 그녀의 방송을 딱 두번인가 들었다.
그리곤 듣지않는다.
난 그이의 방송을 가끔 듣는다.
아침에 일찍 눈을 떠 생각나면 듣기도한다.
난 그녀를 우습게 생각하고 그이를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
방송이란것이 더구나 상업광고에 목을 매어야하는 방송사의 한계를 뚜렷이
너무나 뚜렷이 알고있다.
그래서 그녀가 날리는 코멘트에 킥킥거리기는 할망정
교양정보프로그램의 미덕인 신뢰를 절대적으로 갖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나의 평가가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질에 대한 평가로
해석되는것은 경계한다.
그이의 진행은 매우 시니컬하다.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것이 출근길의 자가용안에서라면
다시 약간 졸립지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다.
같은 시간대의 방방뜨는 음악전문 프로그램이 생각나기도한다.
그녀는 코미디언으로 시사뉴스를 진행하는 김미화씨이고
그이는 교수로 아침방송을 진행하는 손석희씨이다.
이 두사람의이름이 다시 회자된단다.
우습게도 짤려야할 사람으로 거론된단다.
각자 생각하자.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별 시답잖은것으로 말건다고 타박해도 상관없다.
그 눈흘김에도 불구하고 하고픈 말은 그들의 쫀쫀함이
역겨움을 넘어 애처로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두려울까?
최고권력기관이란 기관은 모두 잡고있다.
행정 입법 사법 심지어 인권기관까지 몸을 사린다.
코드맞추기란 말은 이미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난말이다.
권력당사자는 물론 형님까지 행세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그 쪼잔함으로 두사람의 마이크를 걷어차려고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답은 자신감결여가 아닐까싶다.
만약 자신감 결여가 아니라면 이는 매우 불행한 전조이다.
바로 파쇼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전 구성원이 모두 같지않으면 참지 못하는 파쇼.
전 구성원을 통제하지 못하면 참지않는 파쇼.
전체 구성원이 같은 시간에 자고 눈뜨고 먹고 뛰고 싸고 움직여야 안심하는 파쇼.
그런 집단은 내가 아는 한 군대와 교도소와 몇몇 종교집단뿐이다.
종교집단이 자발성에 기인하고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한정된다면
모델은 군대가 적절해 보인다.
군 조직은 머리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호각에 맞춰 뛰고 구르고 뒹글고 쏘고 던지는 집행자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만큼만 주고 필요한것이라면 그무엇도 준다.
여자가 필요하다면 종군위안부든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이 줄수 있다.
여성도 사병용과 장교용과 장성용이 따로이 준비된다.
이유는 모두 국민을 위해서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별 구성원인 국민은 정체성을 몰수당한다.
개인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부정당한다.
오로지 국가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란 이름으로 줄서고 기다리고 맞고 외우고
떠들어야한다.
더욱더 제는 국가란 외피에 국민이란 구성원이 차별적으로 선별되어 내부를
채운다는 점이다.
그 내부에 들어가는 인원은 고작 상위 몇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 내부자들을 위한 숙주역활을 담당한다.
교회건물이 커지는것과 영적 경건함을 유지하는 상관관계는 전혀 없음에도
큰교회목사는 무지하게 빵빵한 권력자로 등극하는 이치다.
교회엔 사랑을 상징하는 예수와 희생의 십자가가
항상 늘 함깨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그 뜻을 실천할 어린 양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양의 탈을 쓴 상업자들이 있을 뿐이다.
돈으로 자신의 죄를 사함받고 돈으로 그들의 죄를 사해주며
사랑으로 포장하는 메커니즘이 반복적으로 행해질 뿐이다.
목탁을 두들기고 향을 피우는것도 다르지않다.
정말 내 영혼은 깨끗하고 자유로워졌는가를 스스로 돌아보지않으니
타자가 그를 대신해준다.
그 타자에게 몇 푼을 집어주면 축복이든 죄사함이든 천도이든
갖은 명목의 종교행위가 행해진다.
그리곤 축복을 떠올리고 영생을 생각하며
부활을 믿고 도솔천을 꿈꾼다.
난 없다. 그런 세상에 나란 존재는 없다.
그저 둥둥 떠다니는 고깃덩어리만 움직이고 앵무새만 떠들며
종족유지를 위한 동물적 행위만이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정신차리라는 얼차려는 내 가슴속에서 공명되어져도
날 각성시키지 못한다.
각성이 없으니 그저 고깃덩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복만 있다.
진정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내 목소리를 만들어보자.
누구와도 같지않은 소리를 내어보자.
똑같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나 홀로 나 스스로 존재하는 그런 세상을 꿈꿔보자.
그런 세상이라면 김미화씨도 손석희씨도
나올수 있는 소리중 하나로 인정할수 있다.
이러한 인정이 파쇼를 막고 파쇼를 막아야 모두가 덜 불행해진다.
특히 장애인이라면 파쇼는 죽음일 뿐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파쇼는 노리개로 전락될 뿐이다.
특히 노인이라면 파쇼는 장례사업을 위한 상품일뿐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초등생인 아이들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여야 타당한것일까?
그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숨이 막혀온다.
그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세상이 지금같아선
아이들의 출생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오늘은 놀토인데도 아이들은 또 학교에 가야한단다.
그 명칭이 영재교육이든 뭐든 아이들은 뺑뺑이를 돌며
경쟁하고있다.
놀아야한다는 말이 그들에겐 이미 최고의 질타가 되었다.
누구와 무엇으로 어찌 노는지 그들은 모른다.
단지 컴퓨터와 영어와 영재와 성적표와
등수가 그들을 규정해준다.
그들의 발길을 막아야하는 난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실천으로 옮기지를 못한다.
배우겠다는 아이를 막는 아빠는
아마 우리집밖에 없을것이란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순환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지렁이를 키워보란 권유를 하는 난 결코 정상이 아니다.
주문한 지렁이와 지렁이 집을 내밀것이 아니라
아이손에서 학원가방을 빼앗아 던지고
보리밭으로 끌고가 솟아나는 그 생명을 느끼게해야함에도 난 그러지를 못한다.
지렁이도 무슨 프로젝트를 해야한다는 아이의 말에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다.
내가 어릴 땐 그저 땅에서 꿈틀거리는 그들을 보고 만지고 함께 했는데
지금의 아이들에겐 돈으로 사서 키워 관찰하고 리포트를 작성할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난 정말 분노는 하는것일까???
원래 있어야하는것이 그렇게 자리하는것.
그것이 자연이란 말의 사전적 뜻일것이다.
아침에 생각난 김미화씨와 손석희씨를 둘러싼 사태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마치 지렁이를 사육해 관찰하여야하는 지금 세상처럼...
- '넓은마을' 사이트에서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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