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렬(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 보행의 특성인 직선이동, 방향전환, 목적지 발견의 3요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편의시설보다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다. 촉각블록(tactile block)이라고 명명한 여러 형태의 블록이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많이 사용되지 않고, 보도가 드라이브웨이(주차장 진입로)와 만나는 지점, 경사지점, 횡단보도 입구 등, 꼭 필요한 장소에만 사용한다. 형태는 점형보다 홈을 판 선형이 많이 사용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우리와 같은 형태의 점자블록을 사용하고 있으나, 역시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널리 사용되지 않고 횡단보도 등 꼭 필요한 요소에만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도심은 복잡하고 주택가는 한가하다. 서양이 우리나라나 일본과 다른 점은 우리는 도심에도 점자블록을 많이 시공하고 있는 반면, 서양은 도심에는 없고, 주택가에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신에 그 사람들은 유도시스템 보다는 보행훈련에 더욱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점자블록의 시공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1988년 파랄림픽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거의 관심 밖이었던 장애인 편의시설이 새로이 부각되는 시점이었다. 88서울장애인올림픽 조직위는 일본식 유도시스템을 채택하기로 하고, 김포공항에서 선수숙소와 경기장까지 음향교통신호기와 점자블록, 경사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점자블록은 여러 도시에서 활발하게 경쟁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고, 88서울파랄림픽이 끝난 후에도 편의시설의 설치는 계속 확대되었다.
그러나 편의시설에 대한 기본연구나 단독보행에 대한 이해 없이 일본에서 보고 온 것을, 수주업체들이 적당히 본떠서 만들어낸 점자블록은 원칙 없는 선심행정에 편승하여 수없이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1994년 12월 30일에 보건복지부령 제1호로 「장애인편의시설 및 설비의 설치 기준에 관한 규칙」이 제정 공포 되었지만, 점자블록 분야의 제한된 선행연구 하에서 제정된 만큼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1998년 그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제정되었으나 이 시행규칙의 [별표1] <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에 포함되어야 할 자세한 내용과 도해가 대부분 삭제된 채, 일반사항에 속하는 내용만 제정되어, 부분적인 시행착오는 계속 되었다.
여러 형태와 문양의 다양한 점자블록을 개발하여 지하철 역사에서 전화박스 가는 길은 1개선, 화장실은 2개선, 환승구간은 연화문양 등으로 구분하여 확대 시공하는 등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시도됐으나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 1998년 보건복지부의 현장실험결과 점형과 선형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단독보행의 정보나 편의를 제공하고, 그 외 보행자들에게는 불편이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이루고, 꼭 필요한 부분에만 통일된 방법으로 시공되어야 한다. 지금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시대다. 시각장애인이 따라 걸을 수 있는 분명한 촉각적 기준선이 존재하는 일반 보도에는 별도의 점자블록이 필요치 않으며, 당연히 유니버설 디자인에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이 점자블록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보도가 잘 정비되고, 구조가 유니버설 디자인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점자블록이 없어도 촉각적 기준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 장애분야와도 상충되지 않도록 횡단보도의 전체 턱을 낮추지 않고 휠체어램프를 소형화하여 횡단보도의 바깥쪽이나 코너에 배치한다. 휠체어는 횡단보도 옆에서 도로로 내려와 횡단보도로 들어올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횡단보도를 벗어난 지점에서 도로로 내려와 횡단보도로 진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리적 근거도 부족하고, 양보 없는 일방적 주장은 사회의 거부감만 줄 뿐이다. 점자블록은 필요에 의해 필요한 지점에 설치하는 것이지, 장식품도 전시행정의 대상물도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처럼 타 장애 분야와의 상충점을 찾아 보완해야 하고, 설치 방법이 통일되어야 한다. 점자블록은 보행훈련과 결합되어야만 그 활용성이 높아지니, 하드웨어로서의 점자블록과 소프트웨어로서의 보행훈련의 중요성도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 브레일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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