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시각장애인의 출판물에 대한 접근 방법(일본 사례

tosoony 2009. 5. 28. 22:04

    해외리포트: 시각장애인의 출판물에 대한 접근 방법(일본 사례)


  신경호(동화작가)


  최근 장애인 보조공학기술의 발달로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정보장애가 갖고 있는 한계를 보조공학기술에 힘입어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쇄물이나 출판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저작권법과 도서관법의 개정으로 인해 출판물에 대한 접근이 한결 용이하게 한 법적 제도의 정비도 갖추어지고 있으며 OCR(광학인식기술) 기술의 발달과 여러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콘텐츠들의 계발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출판물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접근은 어려움이 있어 이를 극복할 방법을 일본의 사례를 통해 한 번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표준화와 네트워크

  현재 우리나라에도 많은 점자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일반 공공도서관에 점자도서관 역할을 위한 별도의 기구를 운영하는 곳도 매우 많다. 이들 도서관은 대개 몇 가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텍스트파일과 데이지(DAISY)파일, 그리고 녹음도서와 점자도서 등이 그런 콘텐츠 등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점자도서관이나 기관에서 제작하고 있는 콘텐츠 등을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자료의 중복화이다. 실제 베스트셀러나 인기도서 그리고 학습에 필요한 도서들은 거의 모든 도서관에서 이중, 삼중으로 도서 제작을 하고 있다. 이런 중복을 막으려면 네트워크화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일본도 도서관의 네트워크화를 통해 해결하였다.    일본의 경우 동경에 위치한 ‘일본점자도서관’을 중심으로 전국의 도서관을 네트워크화하여 모든 도서관에서 제작되는 자료를 한 곳에서 검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이용자는 자신이 주로 이용하는 가까운 도서관의 자료뿐만 아니라 원거리에 있는 도서관의 자료도 충분히 검색하여 활용할 수 있다. 이들 네트워크된 자료는 ‘나이브넷(http://naiiv.net)’을 통해 어디서나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다.

  또 한국의 많은 기관에서 제작하는 도서 중의 상당수는 텍스트파일이다. 이는 현행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많은 기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작권법의 개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불법인 줄 알면서 현실상 어쩔 수 없이 텍스트파일 제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말한 일본의 나이브넷의 경우에는 자료 제공이 크게는 데이지파일과 녹음도서(카셋트 테이프), 그리고 점자파일 형태이다. 특히 점자파일은 거의 모든 데이터가 bes라는 확장자를 가지는 파일이다. 즉 점자파일의 경우 어느 정도는 표준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특수한 사정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점자편집프로그램이 ‘윈베-스’라는 프로그램인데 대개의 경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윈베-스가 채택한 것이 bes라는 확장자를 가지는 파일형식인데 따라서 일본 점자도서관을 비롯한 대개의 도서관들이 점자파일을 제작할 때 이 파일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점자단말기 회사마다 사용하는 파일형식이 다르고 또 점역 소프트웨어에 따라서도 파일형식이 다르다. 또한 각종 콘텐츠를 개발하는 업체마다 파일형식이 달라서 이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해당 업체들이 공동개발하여 표준화 파일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표준화가 되면 일본의 나이브넷과 같이 한국의 여러 점자도서관이나 기관들이 운영하는 도서정보사이트를 네트워크화하고 이들 자료를 표준화된 자료로 제공한다면 현행 저작권법에서도 충분히 지금보다 많은 자료를 제공할 수 있고 자료의 중복제작을 막을 수 있다.

  표준화의 이점은 또 있다. 일본의 경우 일부이긴 하지만 책을 구입하면 뒤에 교환권을 제공하는 출판사가 있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구입하고 이 교환권을 출판사에 보내면 점자파일이나 텍스트파일을 e-mail로 보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료가 표준화되면 출판사들이 이런 파일형태로 도서를 제작해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비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전자출판의 경우 일반도서의 약 50% 정도의 가격으로 데이터도서를 판매하는 경우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최근 개정된 도서관법에서는 국립도서관이 출판사들로 하여금 전자매체 형태의 도서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정비되었다. 이를 잘 활용하면 표준화된 파일 형태로 획기적인 출판물의 접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2. 보조공학기술의 이용

  현재 우리나라에도 각종 보조공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들 보조공학기술은 출판물의 접근에서도 매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여러 보조공학기술을 이용한다. 특히 OCR  관련 소프트웨어나 장치들이 상당히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는 인쇄 출판물을 별도의 콘텐츠로 전환하지 않고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요무베’나 ‘요무라이트’라는 기기는 스캐너 위에 책을 올려 놓기만 하면 그대로 책을 읽어 주고 텍스트화한다. 물론 아직 인식률이 100%에 달하지는 못해서 어느 정도 교정 작업이 필요하지만 별도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노력에 비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술이다. 이런 보조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시각장애인 스스로도 출판물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업체는 더욱 개발에 몰두하고 정부나 기타 단체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더욱 만들어내야 한다.


  3. 개별화

  아무리 대체콘텐츠가 다양하고 그 양이 많다고 하더라도 시각장애인의 도서 출판물에 대한 접근을 100%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자료를 제작해 주는 곳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과 한국의 접근 방법은 조금 다르다. 한국의 경우 대개 복지관 등 사회복지법인이 그 역할을 하는 데 비해 일본의 경우에는 자원봉사그룹이 많이 행하고 있다. 물론 일본도 점자도서관 등 상당수 사회복지법인에서 이런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그룹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필자는 이런 개별화된 요구를 사회적 일자리 사업과 연관시킨다면 더욱 효과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지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의 직업 활성화를 위해 시각장애인의 도서 제작을 한다면 장애인의 직업생활 보장과 시각장애인의 출판물 접근권을 모두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의 의식개선도 요구된다. 지금껏 많은 복지관의 자료들을 시각장애인은 거의 무료로 제공 받아 왔다. 일반도서나 학습도서의 경우 그런 관습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도서의 경우에는 그만큼의 대가도 지불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런 의식개선이 된다면 출판사 역시 표준화된 콘텐츠로 얼마든지 자료의 제공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간략히 시각장애인의 출판물에 대한 접근을 위한 방안을 일본의 사례를 교훈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방법을 제시해 보았다. 물론 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노력과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와 자기희생이 요구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이라는 문제에 맞춰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싯점이 아닌가 한다.독자마당: 손끝으로 보는 아이들  독자마당: 손끝으로 보는 아이들


  김홍엽(천안인애학교 교사)


  저는 시각장애(1급) 교사로서 2008년 신규발령을 받아 이제 겨우 10개월이 된 새내기 교사입니다. 그런데 여느 교사처럼 부푼 꿈을 안고 출발하기보다는 시각장애인 교사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주위 여러 선생님들의 우려와 저 자신 또한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특수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특히 전맹의 시각장애인이 지적장애학교에 발령을 받게 된 것은 처음인지라 그 부담감은 더더욱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맹학교가 없는 지역에서 시험을 봐서 그런 고생을 왜 하느냐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건 저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며, 앞으로도 제 후배들도 이런 불가피한 결정을 할 거라 봅니다.

  시각장애인들의 대학 진학률은 지체장애인과 더불어 가장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이 시각장애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지원하는 학과는 특수교육과를 비롯한 사범계열이나 사회복지 분야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한 해 특수교육과를 졸업하는 시각장애인의 수는 25~30명 정도 됩니다. 그에 반해 맹학교는 전국에 12개가 있으며 3개를 제외한 9개는 사립학교입니다. 이 12개의 맹학교에서 한 해에 시각장애인 교사를 뽑는 인원이 기간제를 포함하여 불과 2~3명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여러 시각장애 대학생들은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서두에 쓰는 이유는 여러 선생님들이 우려한 만큼 저 또한 많은 고민 끝에 현재 이곳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3월 3일 화요일 인애학교에서의 처음 근무가 시작되던 날!

  7년 동안의 맹학교에서의 삶과는 다른 환경에 굳은 결심을 하고 왔지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우는 아이들, 무슨 말인지 모를 말로 횡설수설하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첫 시간! 그래도 제가 작년에 맹학교에서 기간제를 1년 경험한지라 나름 학생들을 대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한 학급에 7,8명 중에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소개하는 학생들은 불과 2,3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상한 것보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지적 능력이 우수한 학생은 어떻게 안 보이는데 선생님이 되었냐면서 반문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도 교사가 될 수 있으며 너희들도 장애인이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면서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학생들 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힘들게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대우를 받으며 놀림을 받아야 하는지 속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화장실 간다는 학생의 말만 듣고 혹시라도 교실에서 실례를 할지 몰라 보냈는데 화장실은 가지 않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바람에 진땀을 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치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되어 4월에는 충남교육청에서 저의 업무와 학생지도에 도움을 주실 보조 선생님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러한 배려로 학생 인솔 및 생활지도를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학생들의 현재 상태나 행동에 대해 제가 물어볼 때마다 저의 눈이 되어 주시며 컴퓨터 업무처리 시 그래픽과 같은 이미지 개체로 접근이 힘들 때면 제가 인지할 수 있도록 알려 주십니다.

  천안인애학교에서 제가 지도하는 교과목은 중·고등부 음악입니다.     음악교과를 지도하게 된 배경은 여러 선배 선생님들의 배려로 시각장애인 교사가 지적장애학교에서 지도할 과목은 음악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신 것입니다. 제가 현장에 와서 느낀 점도 음악이 적절해 보였습니다. 학급 담임이나 타 과목 같은 경우 시각적인 활동을 많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만나는 중·고등부 학생들은 약 170여 명!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학생들의 이름을 거의 외웠습니다. 시선을 못 맞추는 저로서는 이름을 아는 게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소리와 이름을 알아두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말을 하지는 못해도 반향어의 형태만 들어도 누군지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급에 10명 이내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어깨나 손을 만져보고 신체적인 특징을 파악하여  이 학생은 누구구나 하고 알 수 있답니다. 이렇게 학생들을 알아가는 데 한 가지 헤프닝이 있다면 목소리만 듣고 여자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알고 보니 남자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웃음지어 본 적도 있습니다.

  어느덧 10개월이 지난 지금, 뛰어다니는 시한폭탄으로 보였던 아이들이 인사 잘 하는 아이들로, 점심 먹을 때 물까지 떠다 주는 착한 아이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늘 안타까운 점은 제가 보지 못하기에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좀더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저는 손끝으로, 목소리로 학생들을 보기에 힘든 점도 있지만 “삶은 도전하는 모험”이라는 헬렌켈러의 말처럼 저의 삶을 그려 나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만큼 학생들에게 또한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브레일 타임즈 최근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