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인생을 살며 겪게 되는 수많은 파란만장한 일들은 과연 미리 정해져 있을까?
우리는 역사 속의 인물이 겪는 여러 중대한 사건을 대할 때마다 그 시대는 참 특별했다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나는 그러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겪지 않으리라는 무언의 위안을 마음속으로부터 도닥이곤 한다.
TV속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아비규환속에서 죽어가는 조상의 백성들을 볼 때마다, 혹은 식사 때마다 6.25 때 수없이 밥을 굶었고 죽은 시체를 밟고 피난을 했다며 손주의 편식을 고쳐보려 잔소리를 이어가셨던 나의 할머니...
그 모든 이야기들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이 시대 지금 동시대에서 그런 혼돈이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어린 마음속의 확신은 그 시절 나만의 믿음만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21세기를 넘어선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는 동시대에 그러한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의 위기가 두 번씩이나 찾아올 줄 나는 몰랐다.
한 번은 1997년의 IMF 경제위기, 그리고 지금 10년을 막 지나 다시금 더욱 무섭게 지구를 휩쓸고 있는 세계적 경제위기.
2008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년 초 얼마나 많은 내 이웃과 그 가족들이 울며 거리로 내몰릴지, 앞으로 땀흘리며 일을 마치고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두렵지만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좌절한다.
특히나 그 가운데 능력없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기본권은 또 얼마나 뿌리째 뽑히고 후순위로 밀릴 것인가를 생각하면 눈과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러한 전세기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책무만으로도 버거워야 할 집단이 이를 악의적으로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물론 이번 경제위기 사태는 1997년의 경제위기와는 달리 외부적 요인에 의함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구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 또한 평범한 시민들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것은 과연 이 정부가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정말 극복해야 할 책무와 위기로만 여기고 있냐는 점이다.
부패한 지도자와 10년전의 경제위기의 주범인 집단에게 표를 주었다는 점 자체를 이제와서 부정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은 앞뒤 안보고 도덕적 잣대까지 포기한 채 표를 던진 국민들의 절박함은 바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점 그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운도 없이 세상은 10년전 실직한 민초의 바램과 재기를 다시 무너뜨리고 말았다.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면 긴 코미디 한 편을 본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새 정부 인수위의 개그 코미디 속에서 우리는 '오린지'가 얼마나 중요한 단어인지를 알았고, 전봇대를 일사분란하게 뽑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미치는지 알았다.
또 철지난 탤런트인 줄로만 알았던 강부자, 고소영씨가 얼마나 유명한 대스타인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멀쩡한 강바닥을 파고 시멘트로 벽을 칠한 곳에 배를 띄워 한 해 몇 백만명씩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는 경제논리를 배웠고,
4천만 국민의 입속에 들어가는 음식을 몇몇 인간이 미제 숙박료와 자동차 잠깐 같이 탄 값으로 눈감은 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촛불 인파를 새로운 야밤 토끼잡이 게임으로 둔갑시켜 무료 인터넷 생방송을 선사해주는 정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순간 진정 뼈속 깊이 절감하며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 도와주겠다며 부축하면서 한쪽으로 옷 속 깊이 넣어둔 지갑마저 빼앗아가는 집단이 밤늦은 지하철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서민들에 대한 복지 정책이 꼼꼼하지 못해 질책을 받았다고 정권의 부도덕성을 말할 수는 없다.
경제 정책이야 다시 보완하면 되고, 서민들을 위한 노력은 설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를 이용하여 자신의 숨겨둔 잇속을 챙기려는 추악한 시도는 그나마 행해 온 자신의 순수성마저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이 나라 정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 정도쯤이야 정권을 잡은 전리품 차원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오만과 착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다.
전체 국민의 1%도 채 안되는 이들의 억울한(?) 세금을 줄여줘야겠다며 종부세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국민의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하고, 서민의 세금 감면은 쥐꼬리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그 어떤 일관성도 찾아볼 수 없다.
소통이 중요함을 깨달았다며 몇 번이고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숙인 지가 채 6개월도 안되어 '돌격대'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며 또다시 4대강 xx 공사를 자신있게 꺼내 밀어붙이는 이에게 겸손과 소통은 애초부터 없었다.
코드인사를 근절하겠다며 공공연한 협박으로 이전 정부의 인사를 몰아낸 자리에 채 며칠도 안되어 자기 사람들을 줄지어 앉혀놓는 혀를 보며 우리는 종종 독사의 그것과 혼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 남의 초상집에 재를 뿌리는 이 정부의 추악한 행동의 압권은 단연 방송법 개정 시도임에 틀림없다.
YTN 코드 사장 임명으로부터 시작되어 KBS 사장 파면에 이은 마지막 수순인 방송법 개정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서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다만 과연 이 정부가 뻔뻔할 정도로 이렇게 빨리 추진할줄은 다들 몰랐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 언론과 현 정권이 만들어 낸 무언의 카르텔은 정권 창출에도 불구하고 지난 촛불 사태를 통해 그들 스스로 아직도 부족하다라는 자각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예의 '경제위기'라는 만능의 호재를 이용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일사천리로 급조된 방송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현재의 한나라당이나 밀어붙이라는 명령만을 쏟아내는 청와대 모두 자신들이 국민들 앞에서 내세우는 방송법 개정의 정당성이 부정한 음모가 서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과거 야당 시절 MBC의 보도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자기들에게 계속 비협조적일 경우 법개정을 통해 민영화시키겠다는 엄포를 수없이 내세운 바가 있다.
조중동과 같은 거대 신문재벌들이 방송을 거머쥐어도 언론 중립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면서 왜 KBS의 미디어 포커스에서 거론해온 조중동 신문의 부도덕한 행태 보도에는 그렇게들 민감하게 반발하며 결국 민첩하게 없애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소통이 최우선이라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루아침에 돌격대와 같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ceo로 평생 살아온 경영 노하우일까, 서울시장으로 청계천을 성공으로 이끈 전문성일까..
난 이 시점에서 '세계적 경제위기'만큼 이들에게 횡재와도 같은 자극을 준 요인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램대로 침묵하며, 외면하는 많은 국민들을 대하며 어쩌면 저들의 야욕이 당분간 상당 부분 성공하겠다라는 암울한 미래를 체감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은어쩌면 우리들 자신에게 이미 퍼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와 경제난.
이 모든 무기력에서 우리가 허덕이는 사이에 저들은 '세계적 경제위기' 탈출을위해서라며 아무 것도 써있지 않은 백지수표에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연 제2, 제3의 방송법안이 우리들의 목줄을 얼마나 죄어올지..
크리스마스 트리조차 보이지 않는 성탄 전야의 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아무쪼록 세상에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우리들 작은 이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따스하게 채워주시길 기원하며...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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