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다른 도시로 업무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 9시뉴스를 보는 도중이었다.
온통 뉴스의 꼭지들이 이명박 정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의 땅투기, 문서 조작, 거짓말 등으로 들끓고, 강부자, 고소영 등 듣기 거북한 신조어가 한창 회자되며 메인 뉴스의 중요 부분을 허비(?)하던 때라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 때 곁에 안자아서 TV를 시청하던 한 노인 분이 "어떻게 저런 자격없는 x들로만 나라의 관료를 채울 수가 있지? 재주도 좋다니까~~ 쯔쯔" 하며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머리좋고 공부잘하여 출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하필이면 운도 없이 그 가운데 돈관리, 도덕관리의 함량 미달인 자들만 걸려들었을까?
그런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참 운도 없는(?) 위인이 아닐까라는 비약을 잠깐 해보았다.
요즘 들어 신문 잡지를 들여다볼 때마다 '잣대'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사전적 의미로 '잣대'란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의거하는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제각기 발생하는 여러 사건이나 현안에 있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여 판단할 때에만 객관적이고 일반화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우리의 하루 일과와 생활속 여러 사안들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이고 동일한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첫째,
그 한 예가 방금 위에서 언급한 현 정부 관료의 비리 문제라고 하겠다.
사람들은 새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들과 청와대 비서관들이 땅투기와 위장 전입, 거짓말 등의 전력으로 인해 줄줄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며 공분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서 반대로 자못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덕성 문제와 위장 전입, 위장 취업, 대운하, 부도덕한 사업가와의 동업에 따른 도의적 책임 등에도 불구하고 경제 살리기라는 국가적 목적을 위해 국민 상당수가 표로써 감례하고 선택한 최고 수장이라면 그가 임명한 하부 관료와 청와대 비서관들이 가진 비슷한 종류의 흠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관대히 눈감아주는 것이 오히려 일관성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럼 점에서 나는 오히려 뒤늦게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떠들썩한 언론과 일부 사람들의 과민한(?) 반응이 낯설기까지 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요즘 문제가 됨에도 버티고 있는 이동관 대변인은 연일 '엄정 법질서 집행'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둘째,
한동안 유인촌 장관의 과거 정권시 임명된 기업과 단체장의 자진 사퇴 요구가 언론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유장관의 변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 당시 코드인사로 임명된 분들은 새 정부와 맞지 않으니 자발적으로 물러나달라'라는 의미였다. 당시 문제가 된 단체장들은 전 정부시절 임기가 보장된 관료였는데도 정권이 바뀌었으니 임기가 토막나도 물러나라는 협박과 비슷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봐야 할 부분은, 그렇다면 유장관이 새 정부에 맞게 새로 임명하고 싶어하는 단체장이란 역시지금의 정부나 이 대통령과의 코드가 맞는 사람으로 맞바꾸겠다는 또 하나의 코드인사를 하겠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 아닌가? 참고로 한나라당은 앞서의 공직 임명제 단체장들에 대한 임기 보장에 관한 법률을 노무현 정부 당시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적극적으로 가결시킨 바 있다.
이밖에도 한나라당은 지난 5년간 수시로 노무현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해 '코드인사'를 남발하여 10여명의 장관, 관료를 낙마시킨 바 있으며,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초에는 각각 당시 김종필 총리 임명 동의와 노무현 첫 정부관료 임명 등을 빌미삼아 시간을 끌어 '발목잡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바 있다.
한편 올해초 한나라당은 새 정부 장관과 청와대 관료의 비리를 문제삼는 야당들의 압박에 대해 '발목잡기'라는 용어를 꺼내들었다.
셋째,
이번 장관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의 부적절한 재산 편법 증식에 대해 언론에서는 그들 장관의 여러 해명이 자주 소개되곤 했다.
그 중 하나로 지난 수년간 재산과 땅이 수 십 배 이상 늘어난 장관 후보자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재산이 불었냐고 물으니 처음엔 적었으나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땅과 주식 채권 등이 많이 올라 보느이아니게 불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대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잃어버린 10년을되찾자'이었다. 당시 보수 진영을 자극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던 문구였는데, 앞서 낙마한 여당의 여러 인사와 장관들도 한결같이 읊어대던 구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말도 많던 잃어버린 그 10년 동안 어떻게 하여 그토록 재산을 불리고 땅을 넓혀올 수 있었을까? 양극화가 심해지고, 집값이 급등한 과거 정권을 비판하며 의욕적으로 등장한 관료들은 왜 하나같이 지난 10년 동안 강남과 전국의 요지에 땅과 재산을 넓혀갈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그들은 왜 11년전에 자기들 손으로 뭉개놓은 일과 다음 해와의 인과관계에 대해선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을까?
넷째,
광우병 문제로 온 나라가 새 정부 들어선지 2개월여라는 초유의 짧은 기록을 세우며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그에 더하여 독도와일본 천황 사건 등으로 논점의 크기가 커지면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국민들이 제일 격분해하는 사례라면 당연히 수개월 전까지 광우병 미국 쇠고기 도입을 결사 반대했던 농림부 담당 공무원들과 한나라당의 손바닥 뒤집기식의 말바꾸기라고 할 것이다.
여야가 바뀌었으니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태도야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부서의 같은 공무원이 몇 개월만에 공문과 언론 보도를 통해 한 같은 잣대의 주장을 뒤집어야만 할 수 밖에 없는 담당공무원의 인간적 고통은 어떠할까?
몇개월만에 머리속이 개조된 것도 아닌 바에야 당연히 대통령과 상부의 지시가 뒤집기의 원인임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열악한 반박논리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섯째,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순방지로 부시 미대통령 방문이라는 상징적 행보를 따냈다. 특히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이대통령이 행한 퍼포먼스적 행동들은 보기엔 좋았을지 모르나 하룻밤 숙박료로는 너무나도 비싼 치명적인 국가적 손실을 안겨주고 말았다.
특히 국민에게 사전에 내용을 숫지시키지도 않고 무리하게 서두른 미국 순방일정에 맞춰 터뜨리려고 애를 쓴 미국 쇠고기 협상안은 부실투성이 일방적인 노예문서처럼 누더기가 된 채로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먼저 알려주지 않은 채 몇몇 미국 재력가들 앞에서 억지 박수속에서 처음으로 합의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대통령은 미쇠고기 협상 타결을 해주었으니 미국측의 한미 FTA도 곧 비준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으나 과연 그럴까?
다시 우리나라 얘기를 해보자.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노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할 때마다 줄곳 '등신외교'니 소신없는 행보라며 깍아내리기 바빴다. 거기에 지난 2007년 10월 임기 만료 몇달을 앞두고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이 전격 단행되자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중단하라거나 새 정부 취임 이후로 미루라는 공세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부시 대통령의 임기 또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새로 공화당의 후보가 될 멕케인, 민주당의 오바마와 힐러리 모두 부시 대통령의 색깔과는 전혀 다르며 민주당 후보들 모두 한미 FTA 조기 비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고 있어 한미 FTA 조기 비준은 오래전부터 이미 물건너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깊이 깊이 숨겨두고 나중에 꺼내야 할 미쇠고기 카드를 지레 먼저 꺼내서 백지수표채로 던져주었다. 거기에 더욱 아득한 일은 이번 미국 순방 전후로 국방부에서는 F15K 추가 구입에 대한 공대지 미사일을 고가의 미국산으로 구입하기로 했으며, 방위비 분담비, 미군기지 이전비, MD 체제 구축비 등 한미 동맹 복원이라는 이름하에 상상할 수 없는 고가의 비용을 부담하기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청계천과 서울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광우병 관련 촛불문화제와 집회에 대해 여당에서는 불순한 좌파가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2만여명이 넘는 순박한 사람들 사이를 또다시 좌파, 우파라는 뻘건 색을 덮어씌워 이간질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저급한 시각이 안쓰럽기만 하다.
여섯째,
우리 장애인들도 유권자로 각자 자기네 장애인의 경제와 복지발전을 바라며 신성한 한 표를 행사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유력한 장애인 단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명박 후보야말로 복지발전을 위해 헌신할 사람이라며 홈페이지와 각종 모임 등에서 줄줄이 지지 선언을 했다.
그러나 지금 필자의 우려대로 이명박 정부는 성장과 기업 중심의 경제정책만을 최우선으로 삼아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한다. 특히 7% 성장률이라는 현실 불가능한 숫자를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임기 시작 수 일만에 6%로, 아니 이젠 4%로 하더니 5년 임기 말까지 7%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으로 계속 무너져내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외부적인 변수인 원유, 외국 농산물 폭등 등의 어쩔수 없는 악재도 있다. 결국 정부는 집권 초기 공약 실현과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신화에 짖눌려 여당인 한나라당조차 반대하는 국가 잉여 예산을 풀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급박한 흐름속에서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의 확충과 발전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뜻한 정부',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많은 예산 책정과 확고한 운용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공약집에서도 나와 있었지만 '의료보험 및 의료산업 개방', '자사고 특목고 대입 완전 자율화' '백골단과 산업근로 안정', '1억원짜리 소'를 정책 우선과제로 밀어붙이는 정권하에서 장애인의 삶이 앞으로도 나아지리라고 과연 우리는 생각할 수 있을까?
이처럼 잣대란 우리 일상생활을 아우르는 삶의 기준이 되는 프레임과 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잘못된잣대로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너무나도 크나 큰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며, 올바른 잣대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삽질과 날림공사, 일사분란, 밀어붙이기식 공기 단축 등의 아이콘이 각광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다원화된 사회에서 우리의 의견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루는 시대가 도래했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현 정권에게 대오각성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어두운 미래이지만 오늘 하루도 작은 희망이라는 햇살 한조각에 기대를 걸어본다.
* 2008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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