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

tosoony 2005. 4. 11. 00:13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

 

  누구나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배가 고프면 처음에는 허기지다가 나중에는 반드시 두통 증세가 나타난다. 그것도 단순한 두통이 아니라 기분까지 나빠지게 만드는 희한한 두통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배가 고프도록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나름대로 운동을 해도 도대체 뱃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아마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많이 먹어서 배부른 것도 싫지만 배고픈 것도 만만치 않게 싫어한다. 아니, 배고픈 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몹쓸 두통을 앓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두통의 길잡이인 배고픈 느낌이 싫다. 그런데 가끔 밥 먹을 짬을 놓쳐서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배고픔의 그림자인 두통이 나를 덮칠 때가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시외에 있다가 혼자 운전을 하면서 대전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슬슬 허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곧 두통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통을 잠재우려면 뭘 좀 먹어줘야 하는데 대학원 강의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의를 잘 듣기 위해서는 머리가 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배가 고프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먼저 주차를 한 다음 학교 앞 음식점을 찾아갔다. 그래도 학생으로서 양심은 있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지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주머니를 쑤셔보았다. 그러다가 주머니에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지갑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두통이 따끔거림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주문을 취소하고 그냥 나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창피를 무릅쓰고 주인아저씨에게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돈을 빌려서 지불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시더니 선뜻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3,000원을 떼먹을 놈처럼 보이지는 않았나보다. 어쨌거나 믿어주시니 다행이었다. 주인아저씨가 믿어준 덕분에 저녁 한 끼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두통에 시달리지 않고 강의를 잘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사회복지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뜻밖에도 주머니에 돈이 없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무에게도 없다. 그럴 때에 손해를 각오하고 믿어주는 바로 그 사람이 사회복지사요 목자이며 예수님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Ⅱ고린 5, 7>

 

장애인사목 전담신부 나봉균<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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