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꽃구경
날짜:2004/04/06 22:24
지난 주 일요일에 이어 엊그제 지난 황금의 연휴 기간 동안에도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피어난 절호의 꽃구경을 싹쓸어버리는 가혹함을 범하지는 않은 것 같다.
토요일부터 4일과 5일 내내 온 세상은 마치 모두가 꽃을 보기 위하여 이 삶을 사는 것처럼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니 말이다.
우리 식구도 결국 피로를 풀고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순진한 바램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차마 사람이 때거지로 모이는 신탄진, 계룡산, 세천 유원지같은 곳으로 발길을 들이밀지는 못하고 사람이 잘 모르는 보문산의 시각장애인 산책로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곳처럼 조용하고 걸림돌도 없이 자연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곳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 떠밀리기 일수였다.
세상에나..
산책로를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데 지영이가 말한다.
아빠, 벚꽃하고 진달래도 피었어~!!
덩달아 집사람의 탄성이 들린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저 소리..
으음, 오늘 일찍 집에 가기 어렵겠는데..
연이어 지영이가 말한다.
야, 목련도 있네~
으윽, 오늘 밤 새는거 아녀~
지영이는 아빠의 말이 무슨 소린지 몰라 영문을 몰라 하는데 집사람만 배를 잡고 웃는다.
예전, 그러니까 15년 전인가, 집사람과 애인 시절 89년 3, 4월 꽃에 대해 전혀 둔감하기만 했던 나를 일깨워 밤이 깊도록 대명동 캠퍼스의 가로등과 벤치 곁에서 소주 한 병을 옆에 두고 그이의 탄성과 분위기에 쫄아 시키는대로(?) 기타를 쳐줘야 하며 밤을 보냈던 그 때 그 즈음이 생각나서이리라..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우리가 전에 그랬었던가 싶을 만큼 쑥스럽지만 그래도 잊어버리고 싶지만은 않은 기억임에 분명하다.
어쩌다 이렇게 세월이라는 큰 강물에 흘려 보내고 말았는지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그럼.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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