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영초언니

tosoony 2017. 6. 16. 08:09

 

90년대 말 당시 사회교사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사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자책에 빠져있던 나는 어느 때부터 시사 주간지를 열독하게 되었다.
그 때 눈에들어온 잡지가 시사저널(현 시사인)이었다.
당시 여러 신문사에서 주간지를 앞다투어 내놓기는 했지만 내용이 지리하고 피곤하기까지 한 중언부언에 식상하던 나는 당시 시사저널의 차별화되고 객관화된 날카로운 지면에 푹 빠졌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pc통신 천리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던 회사가 웹으로 옮겨가면서 소위 말하는 웹접근성을 전혀 지키지 않아 갑자기 한 주에 한번씩 갖던 즐거움을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초조하기까지 하던 나는 결국 시사저널측에 전화와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상담 전화를 받은 이는 시각장애인이 음성을 통해 자기들의 기사를 읽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추후 답을 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러던 며칠 후 갑자기 모르는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당사자는 자신이 시사저널 잡지의 편집장이라며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독자 중에 시각장애인들이 이렇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조만간 홈페이지 개편을 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일개 실무자나 담당자로부터의 메일 정도면 최고의 성의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소위 최고 책임자인 편집장으로부터의 전화 자체가 너무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해결에 대한 의지 자체보다 일개 독자, 특히 어쩌면 무시해버릴 수도 있는 소수에 이런 성의를 보여준다는 데 오히려 내가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아침 라디오 뉴스공장 인터뷰에 잊혀졌던 출연자가 나왔다.
지금의 퇴색된 시사저널이 아닌 과거 시사저널의 여성 편집장이자 현 제주 올래 이사장으로 책을 출간한 서명숙씨.
바로 그 분이었다.
제주의 길을 닦는 데 헌신하고 계시고 여성운동을 위해 목소리를 내신 과거 서명숙 편집장을 대하면서 새삼 반가운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는 그가 모처럼에 쓴 논픽션 '영초언니'를 얼른 구매했다.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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