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지하철 어르신 도우미 체험

tosoony 2016. 11. 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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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쉬는 토요일 오후, 그것도 지방에서 촛불 시위가 열리는 서울로의 출장행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약속이니 어쩌겠는가.
다행히 KTX표는 구했는데, 문제는 서울역에서 목적지인 상일동까지 지하철로 환승을 해가며 공익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동하는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특히 광화문과 인접한 종로3가가 불안했다.(올 때야 4호선 동대문역사를 통해 5호선 환승이 더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일단은 평소대로 서울역 KTX 공익을 통해 1호선 지하철 역까지 간 후 도우미를 부르도록 했다.
잠시 후, 웬 남자 어르신 두 명이 나타나 도우미를 찾느냐고 한다.
평소에도 혼자 멍하니 흰지팡이 들고 서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으레 도와주겠다고 물어오는 통에 조금 있으면 공익이 올꺼라며 정중히 사양 인사를 밝혔다.
그런데 어라, 이 분들 물러서지 않고 당신들이 도우미란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재차 역에서 나온 분들이 맞느냐고 하니 연이어 그렇다며 팔을 내미신다.
시간도 없고 광화문으로 향하는인파도 걱정되어 환승 목적지인 종로3가까지 목적지를 밝히고 탑승 안내를 부탁하고 플랫포옴으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내내 연세가 있다보니 자세도 불안하고 종종 주변 인파에 내 몸이 부딛치곤 하며 플랫포옴으로 내려섰다.
다시 적당한 출입구 근처로 가는데 사람들로 인해 부딛치려 하는지 어르신 한 분이 계속 소리를 친다.
"어이, 거좀 비켜요. 거 좀 비키래두~~"
작게 말하거나 옆으로 비텨서도 될텐데 온 동네 떠나갈 듯 소리도 참으로 크다. 얼굴이 화끈화끈. .~~ㅠㅠ
적당한 출입구칸에 도달하자 두 분이 서로 상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선 차량 번호를 적어야 혀."
"어디 어디가 차량 번호가 있는데?~~"
"저기 저 있잖여~~ 633번"
암만해도 불안감이 계속 증가하기 시작한 끝에 확인 말씀을 드린다.
"제가 타는 칸수 번호도 알려주셔야해요. 종로3가에..."
"알아요. 걱정말아요"
그런데 전혀 안심이 안된다.
이윽고 차량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으로 들어섰다.
과연 내리는 역에서 공익이 나와 있을까?...
몇 정거장 되지 않은 탓에 종로3가 역에 내리자마자 주변을 유심히 의식했다.
시간이 짧다보면 내려오는 시간이 있겠지하고 조금 기다려본다.
그러나 5분을 넘게 기다려도 아무도 내려오지 않고서야 기우가 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지난 여름 받아둔 지하철 어플을 통해 종로3가 역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도우미를 다시 요청했고 조금 있다가 젊은 직원이 뛰어 내려왔다.
계단을 올라가며 그제서야 나는 얼마 전부터 몇몇 역에 시각장애인용 도우미로 어르신들을 시에서 채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튼간에 빨리 목적지로 가야 하는 탓에 공익이 나를 3호선으로 안내해주기를 기다리며 따라갔다.
그런데 어라, 이 친구 잠시 후 대기하던 또다른 남자 어르신한테 내 팔을 인계하는게 아닌가?
"할아버지, 왜 아까 연락 받고 그냥 여기 서 계셨어요?"
그러고는 바삐 가버린다.
다시금 불안해하는 나에게 팔을 내민 이 어르신은 아까보다 자세가 더 불안하고 걸음걸이가 두 배나 더 느리고 위태위태하다.
나중엔 내가 어르신을 부축하는 듯이 반 보 정도 더 앞장선 꼴이 되었고 헉헉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린다.
거기에 더하여  자꾸 까먹으시는지 몇 호선이냐, 어디 간다고 했지라는 질문을 두 번씩이나 하신다.
나중엔 1호선에서 3호선으로 향하는 길이 헛갈리는지 근처에서 청소를 하는 여자 아주머니를 보자 길을 묻는다.
"어이, 나 장애인 도우미인데 상일동 가는 3호선 이리 가는 거 맞수?"
"맞아요. 근데 장애인 안내하신다는 분이 길을 모르면서 어떻게 안내를 하신다는거예요?"
하며 어이없다는 듯 타박을 한다.
그러자 이 분 왈,
"나 청각장애인이야. 소리가 잘 안들려서 그래.~~~"
하며 괜하게 그 여자분한테 엉뚱한 역정을 내며 지나간다. 점점 더 불안 불안.
긴 시간이 걸려 이윽고 3호선 플랫포옴에 들어섰다.
몇 번이고 이 방향이 상일동 맞죠?라는 확인을 하고서야 열리는 차량 안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금 어플을 이용해 3호선 도우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어르신이 암만해도 내 위치를 전달하지 않을 것 같다며 상일동역에 정확히 전달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다행히 목적지에서는 젊은 직원이 나왔고 가까스로 시간에 늦지 않게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상일동 직원의 조언에 따라 5호선 동대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했다.
이 때까지는 정직원분들이 나와서 부담없이 4호선 서울역 방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역에 내려서니 다시금 여성 어르신 한 분과 중년의 여성 코디 직원 한 명이 나를 맞는다.
이번 어르신은 그래도 가장 몸이 날렵하고 대화도 잘되는 분이시기는 했는데 길을 자주 놓치는 바람에 뒤에 선 코디분이 계속 지적을 하곤 한다.
서울역 매표소에 도착하여 도우미를 부탁하고 곁에 서 있으려니 굳이 다시 되돌아와서 나를 근처 빈 대합실 의자에 앉혀주시는 온정을 베풀어주시기까지 하신다.
  아무튼 덕분에 진땀을 빼면서 무사히 주말 서울행 나들이를 하고 내려왔다.

그동안 평소 서울 지하철역사에 배치된 공익 덕분에 원하는 곳으로의 이동을 편하게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배치된 어르신들도 그 취지나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노력 등은 진심으로 감사한 조치라 하겠다.
다만 시각장애인의 이동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안전한 이동이라고 볼 때 아직 그 점에서 미진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어떻게 안내를 해야 하는지 몸의 움직임이 느리거나 서툴러 자주 부딛치곤 했고, 종로3가에서 만난 분은 청각장애와 보행에 어려움이 있어 안전하게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실제 그 분들의 실수로 엉뚱한 곳에 내리거나 안전사고라도 난다면 그로 인한 문제는 심각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한 어르신은 왜 이 일을 하시냐는 나의 질문에, 집에서 노는 것보다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하지 않느냐고 하여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해지기도 했다.
아마 지금이 일종의 시범 기간이 아닌가 한다.
다른 분들도 어르신 도우미 체험 과정에서 나타난 개선 사항을 서로 공유하고 담당 관청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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