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그러나...

tosoony 2012. 1. 30. 02:30

 

어릴 적 속담 시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 하나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를 들곤 한다.

생각해 보면 아주 적절히 생활속 예를 잘 든 속담인 것 같은데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문구는 직설적으로만 들리기도 해서 "새가 사람 말을 알아듣나요?"라는 질문에 뒤집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속담이 내겐 완전하지 않은 속담이라는 확신(?)이 요즘 들어 다시금 종종 들곤 한다.


지난 설명절 시즌, 부모님 댁이 수도권이라 가족과 함께 여유있게 역귀성의 한가함을 즐기며 운전할 즈음이었다.

아내의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 차를 구입한 지 6년여가 지나는 동안 주행 키로수가 무려 20만을  목전에 두고 있어 앞으로 차를 어떻게 유지할지 새로 사면 언제 무슨 차가 좋은지를 두고 한참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명절 당일 새벽미사를 위해 차를 끌고 나오는데 웬지 차가 무겁다는 느낌이 들더니 대전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에서도 누가 우리 차를 뒤에서 붙잡는 것 같고 조금만 턱을 넘는 데도 머리골이 울리는 듯한 충격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차운전은 않지만 그래뵈도 조수석 탑승 경력(?) 19년의 베테랑 기술에 소리와 진동 하나만으로도 평소 내 차의 오일 교체 상태나 밸트 교체 주기를 제법 간파해내는 내 실력으로 볼 때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얼른 아내에게 잘 다니는 카전문점에 다녀오라고 했는데, 얼마 후 걸려온 전화.

우리 차 쇼바가 나가고 뭐뭐뭐~~도 나가서 오일이 줄줄 새고 있어서 어떻게 이렇게 굴러왔는지 신기하단다.

총 견적이 64만원...

(아이고, 연말정산 돌려받는다고 좋아했더니 딱 고만큼 수리비로 나가게 되었다... ㅠㅠ~~)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것이 평소 주인님의 말을 잘 득고 다니던 우리 차가 왜 갑자기 스스로 미친듯이 중증의 고장을 내며 셀프빅엿의 항명을 저지른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귀성길 내내 차속에서 떠들어 댄 '차 바꿔버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가 무슨 무속신앙이나 토테미즘에 근거한 얘기를 읊으려나 보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이런 일이 내게 있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 신혼 전세집에 살면서 마침 옆 건물 공터가 새로 아파트 분양터로 정해지고 유명 개발사가 건축 공사를 하게 된다는 소식에 우리 부부는 한동안 고민했었다.

그래도 일을 저지르고 나면 해결책이 나오리라는 생각에 어느 날 거실에서 아내와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분양 신청을 하고 그 때까지 어떻게 전세를 유지하며 이사할 지를 한참 상의했다.

한 이틀이 지나서였을까.

집안을걸어다니는데 거실 마루바닥이 눅눅해지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안될 지경이 될 즈음 관리실 사람을 불렀다.

결과는 마루바닥 밑 파이프 누수가 생겨 물이 솟아오르고 있고 더 심각한 건 아래층(주인집이 바로 아래층이었음) 거실 천장도 조만간 물이 샐 단계에까지 몰렸다는 것이었다.

그 후 어이없는 공사로 위 아래집이 난리를 피우면서 푸념처럼 한 말,

"요 놈의 집이 귀가 달린거여, 지 버리고 간다고 삐진거여?"

이후에도 이런 일은 내게 반복되었다.

한번은 새 모델이 나와 휴대폰을 바꿀까 하고 친구들과 얘기를나누고 대리점에 전화해서 며칠 내 알아보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휴대폰을 켜는데 갑자기 멀쩡하던 폰이 전원이 들어오다가 안들어오기를 반복한다.

씩씩거리며 당황해하다가 용케 수리점에 찾아가 물어보니, 보드가 나가서 수리를 해야 한단다.(참고로 나는 평소 휴대폰을 일부러 떨어뜨리거나 하는 비인간적 짓은 절대 하지 않으며 소장물품 중에서도 제일 애지중지하며 쓰는 사람임~~ ㅋㅋ)


일일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위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례가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분들은 내 자신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새 물건으로 교체해야겠다는 마음이 기존의 물건에 소홀하게 되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고장이 아니겠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일면 그런 점도 있으리라 나 역시 애초부터 많이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례를 그런 이유로 몰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니 어찌하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브는 무언가 큰 집안의 세간을 바꾸려 할 때면 중간에 웃으며 습관적으로 이야기한다.

"여보, 말조심해요. 또 들을지 몰라~~"

"맞아 또 갑자기 내일 아침 TV가 안나오고 식탁 다리가 내려앉을지 누가 알겠어..."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