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교단

엿 -(옛 글)

tosoony 2005. 4. 8. 00:31

   목:엿                                              관련자료:없음  [1526]
 보낸이:문성준  (tosoony )  1998-02-22 12:47  조회:28

지난 19일은 저희 학교 졸업식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졸업식 광경은

흥분과 축하, 서운함 등이 함께 어우러진

그런 자리이지요.

1시간 반 식순 중에서 대다수가 상장

수여로 채워진 자리이지만, 그리고 여타 일반학교의

화려한 졸업식장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졸업식 진행은 오히려 더욱 더

진지한지도 모릅니다..

화려하지도 못한 졸업식, 그나마 상장이라도 많이 쥐어주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저희 교장선생님의 방침이시죠.

이점엔 저도 동감합니다.

 

식이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번에 대구대를 들어가게 된 한 제자의 아버지가

지나가던 저의 손을 잡고 꾸벅 인사를 하더군요.

그동안 제 자식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았다면서 말입니다.

제가 뭐 특출나게 잘 가르친 것이야 없지만

어려운 가운데서 대학을 가고자 성실하게 노력하는녀석이

무척 대견해 직간접으로 자원봉사를 구해 연결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직접 차를 타고 그 봉사자를 찾아가

녹음테이프와 자료를 주고받기까지 한 기억이 납니다.

점자자료와 적절한 학습봉사자만 좀 더 충원되었어도

이번에 거둔 점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던 아이였습니다만

그래도 전국 맹학생 중 세번째를 차지할만큼

스스로가 많은 노력을 한 전맹 제자였습니다.

전 평소 그렇게 생각합니다.

각 맹학교에서 각기 진학생 수를 발표합니다만,

사실상 저는 그 가운데 전맹학생의 진학이야말로

진짜로 각 학교가 키워낸 학생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약시 학생들이야 알아서 묵자자료 구해 보고, 혼자서 학원다니고

하니까요.

아무튼 그 학생의 아버지는 몇번이고 제게

감사의 말을 표하더니 갑자기 제 팔에 무언가를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무척 머쓱해하시더니,

'죄송합니다. 별건 아니고, 전통한과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가르친 스승에게 달리 감사의 뜻을 표할 것은 없고

어려운 가운데 전통한과라는 것을 구해 보자기와 함께

싸서 제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극구 여러차례 사양을 했건만

그분은 결국 제손에 그걸 안겨주고 떠났습니다.

식이 끝나고 썰물처럼 졸업생들이 학교를 빠져나간 후에

저는 그것을 열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엿이었습니다.

상자안 하나가득 들어있는 길다랗게 생긴 그 엿다발에는

정성스럽게 콩고물이 묻어있었고, 잘 뽑아낸 엿가락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무척 당황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엿을 손에 쥔 순간 정말이지 부모의

자상하고 짙은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래 특수학교, 그가운데에서도 맹학교란 그 특성상

촌지란 찾아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선생님들이

자신의 돈을 털어 학생들에게 물건을 사줘야 하는 상황도 자주 생기는 곳입니다.

선생님들이 재학하는 수년동안 한번도 학쌩 부모님의 얼굴을 대하지도 못하고

마지막 졸업하는 날까지 언제 보호자가 아이를 데려갔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제가 받은 한다발의 엿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이제 교육 경력 겨우 5년이 넘어가고 아직도 교육에 대해

뭐라 자신있게 설명할 수 없는 선생입니다만,

이런 것이 바로 제자를 가르치는 교사의 보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에게 풍성하게 엿을 나누어주고

남은 일부를 집에 가져왔습니다.

딸래미는 원래 엿을 좋아하는 터라, 콩고물을 줄줄 흘리면서

'막대기엿'이라며 잘도 먹습니다.

오늘도 냉장고에 넣어둔 몇개의 엿을 꺼내어 입에 물면서

손끝에 묻어나는 콩고물에서 그들의 애정과 사랑을 느껴봅니다.

 

토순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