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교단

선생이냐 스승이냐

tosoony 2009. 5. 16. 00:22

스승인가 스승님인가?

모르는 번호인데 문자가 날아왔다. 호기심이 일어서 전화를 했더니 고교후배라고 소개하면서 이번 사은회에 꼭 참석해 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여기저기 연락하다 보니 동문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내 동창도 몇 명 나온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여의도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사 근처  x 맥줏집이란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사용하던 건물은 진보신당인데 민주노동당이라니 똥통 학교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 맥줏집 주인이 동문이라서 거기서 스승님을 모시고 사은회를 하겠다는 거다.

뭐 맥줏집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꼴에 스승님을 모신다는 정중한 표현을 쓰면서 사은회 장소가 맥줏집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애초부터 먹고 마시자는 의도 아니냐 떠그럴.

거길 찾아가는 길에 조금 일찌감치 서둘러 여의나루 역에서 내려 xx회 사무실을 들렀다 갈까 생각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사은회 장소를 가다가 작년 장애인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농성 천막이 생각났다. 농성하던 장애인들도 생각났다.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 폐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낸 장애인도 있었는데 설마 죽지 않고 살아있겠지?!

맥줏집을 찾아 들어갔다. 벌써 음악이 흐르고 왁자지껄하며 요란했다. 이런 건물만 들어오면 그는 체질적으로 싫었다.

지금은 도망갈 일도 없으면서 출입구만 막으면 지하실에 갇혀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끔찍하게 싫다.

짜식들 똥통 학교 동문이 그래도 남들이 하는 걸 흉내를 내서 방명록에 존함을 써 달란다. 흠, 머 존함까지야 되겠느냐만 까짓 "XXX"이라고 끄적여 주었다.

그런데 짜식 회비가 5만 원이란다. 뭐야 이거 맥줏집 장사시켜 주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얼마나 퍼마시려고 이러나 야덜이.

어느 놈이 자기가 동창이라면서 모르느냐고 반가운 척 달려들어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전혀 기억이 없다. 이놈이 도대체 누구야?

하기야 학교 명예를 위하여 체육 특기생으로 전학을 왔으니 기숙사에서 체육관으로 쳇바퀴 돌았지 교실에 들어가 책을 펴 수업을 받은 기억이 없으니 그놈을 모르는 게 당연하였다.

당시에 학교 측에서야 수업이고 나발이고 한 학생의 장래가 망가지거나 말거나 학교가 이름이 알려지기만 하면 되었다.

하긴 학교 측 의도대로 그 학교 이름이 떠들썩하게 만들기는 했었다. 그것도 단 한 방에 교감 선생님 이빨을 빠지게 한 사건이었으니 사건치고는 꽤 큰 사건이었다.

사람의 이빨이 그렇게 약한 줄 그때 알았다.

뭘 잘못 했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데 체벌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교감선생이 오가면서 뺨을 짝 짜악 치고 다니는데 아픈 것보다 매우 모욕적이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째려보았었다.

"야 새꺄 눈 까고 쳐다보면 어떡할래. 너 그러다 사람 치겠다. 어디 쳐봐, 쳐보라고." 그러면서 얼굴을 들이대며 또 짜악 하고 뺨에 손이 오르락거렸다.

아 ㅆㅂㄹ 이게 선생이야 뭐야 하는 순간 꼭지가 확 돌았다. 주먹이 앞으로 쭉 나갔다. 으흑 좀 참을 걸 그랬다.

교감선생이 엎드려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데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젠 끝장이구나 싶었다.

잠시 후 주변에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교감선생님이 손을 펴는데 하얀 것이 두어 개가 쥐어져 있었다. 불어진 이빨이었다.

이때 교장선생님이 우당탕거리며 들어왔다 그 뒤에 체육선생도 따라 들어왔다.

교장 선생은 전직 경찰 간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거의 조폭 수준으로 학생은 물론 교직원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약간 쫄아서 튀어야겠다는 생각에 교무실 문을 한 번 훑어 보았다 닫혀있었다. 아무리 귀신같은 재주가 있어도 당장에 문을 열고 튀기는 어렵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교장의 두 발차기가 날아들 텐데 이건 죽으려고 빽쓰는 꼴이다. 누군가 열고 들어오는 기회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어느 놈이 눈치도 없이 선생님 하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기회는 이때다. 후다닥, 날렵하게 똥침 맞은 똥개처럼 문쪽으로 뛰었다.

아, 그러나 교장이 경찰 출신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가늘게 째진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면서 옆에 의자를 문쪽으로 확 밀었다.

그걸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의자에 다리가 걸려서 앞으로 소리도 요란하게 굴러버렸다.

그래도 그는 젊었다. 그 순간, 넘어지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 생각했다. 문만 그대로 열려 있다면 발딱 일어나서 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역시 빈틈없는 교장이었다 어느새 열린 문을 딱 가로막고 팔짱을 끼고 득의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거 교장인지 조폭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체육교사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서 귓불을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확 젖히고 일으켰다. 이건 학생에게 체벌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조폭들이 하는 짓거리 그대로인 것 같다.

이젠 죽었다 그냥 잘못햇다고 무릎 꿇고 빌까? 아니지, 어제도 배구선수 한 놈 잘못했다고 두들겨 맞고 지금까지 기숙사에서 눈물 쫄쫄 흘리며 맨소레담 바르고 마사지 받고 있는데. 난 죽어도 그 짓거리는 싫다 싫어.

아 뭐야 이거 선수로 뛰면 공부하지 않아도 장학금도 주고 기숙사도 무료고 어쩌고 꼬드겨서 학교까지 옮겼는데 이거 무슨 빌어먹을 경우야 도대체.

교장이 그의 허리띠를 잡고 앞뒤로 흔들며 다리를 걸어 자빠트렸다. 아니 그냥 자빠져 주었다. 기회를 보아야겠다. 일단 대항하지 말자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 주어야 기회가 생긴다. 이건 강한 자와의 싸움의 첫째 진리다. 상대가 거드름 피우고 방심할 때를 기다리자.

역시 진리는 통하는 법이다. 교장이 그가 넘어진 걸 확인하고 느긋하게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으려고 당겼다. 때는 이때라고 후다닥 튀었다. 뒤에서 체육교사가 따라오면서 욕지거릴 했다. "야 새꺄, 거기 않 서 너 죽을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냅다 뛰면서 교무실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언제 모였는지 배구부, 복싱부, 마라톤 하는 놈들이 모두 재미있다는 득 구경하고 있었다 떠그럴 놈들,

체육교사가 헐떡이며 여전히 따라왔다. 힝, 그러나 나이가 벌써 40살이 넘었는데 팔팔한 청춘 만 18세의 쌩쌩한 잘 훈련된 운동선수 심장을 어떻게 이기냐 이거다.

 그대로 정문을 향해 죽어라 하고 뛰었다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제 학교와는 끝이다. 체전이고 나발이고 이제 끝이다. 아, 정말 인생 초반부터 꼬인다 꼬여.

그는 잠시 옛일을 생각하면서 교장이나 교감 혹은 당시 그 체육교사가 나오는지 물었더니 연로하셔서 오시지 않는단다. 하기야 그의 나이가 벌써 60살이 넘었으니 대충 짐작이 갔다. 공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통 학교 동문이 많이도 모였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똥통 학교 다녔던 놈들이 뭐가 그렇게 자랑스럽다고 모이는지 모르겠다.

다른 동문회를 가서 보면 xx 학교 동문회라고 버젓이 팻말이 있는데 그런 것도 매달지 못할 정도니 참 지지리들이 모인 것 같다.

차라리 야학 동문은 어려운 가운데 학구열에 자신을 불태워 성공했다는 자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뭐냐 이거다.

옷은 분명히 빤드르하게 입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지지리 같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건배하는 소리에 섞여 "아파트가 몇 평이다. 애가 이번에 미국으로 영어 연수를 간다. 쟤는 이혼하고 쌩쌩한 젊은 년하고 재혼했데, 쨔식 능력이 좋은가 봐!." 하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놀부가 부자가 되겠다고 제비 다리를 분질렀다가 고치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는 교육은 참 잘 받았고 배운 그대로 잘도 제비 다리를 분지르며 산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배워서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하고 졸업해서 돈 잘 버는 직장 들어간 놈들은 학교 수업이 도움됐다고 믿고 또 그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제비 다리 분지르는 법 배우라고 학교에 가서 공부 잘하라고 등 떠밀겟지.

그런데 그렇게 배워서 자기만 잘 먹고 잘살면 성공한 인생일까? ㅆㅂㄹ.

오로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잡아 돈 잘 벌고 잘 먹고 마음대로 살라고만 가르치는 게 올바른 교사인가?

그는 학교에서 글을 읽고 쓰고 계산하는 걸 배우긴 했어도 다른 것은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월사금 받아서 뽑기 사먹고 만화방에 가서 다 쓰고 제때 내지 않는다고 애들 앞에서 두들겨 맞았고 엄마가 학교를 오지 않는다고 또 얻어터지고,  공부 못한다고 복도에서 머리 위로 손들고 다리가 저리도록 무릎 꿇고 앉아야 했었다.

뭐 학교가 글 읽고, 쓰고, 계산할 줄 알고, 그 나머지는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피 터지게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돈 잘 벌어야 그 굴레를 벗어난다고 가르쳤었다.

근로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거나, 우리의 옳바른 역사의 진실을 가르쳤다면, 뒤틀린 사회를 느끼고 깨닫게 해 주었더라면,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 강대국으로 민주주의 우상이 아니고 일종의 제국주의를 표방한 나라라고 가르쳤더라면,

3.1 4.19 5.16이 어떤 날이라고 그 진실을 자세히 알려주었더라면,

사회가 잘못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삶이라고 가르쳤더라면,

머리로 제비 다리를 고치기보다는 마음으로 제비의 아픔을 먼저 느끼라고 가르쳤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어렵다 힘들다며 아우성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교사들이 그런저런 사실을 대충 귀띔이라도 했더라면, 이 사회 구조를 일찌감치 깨닫고 가진 거 없이 살아도 당당하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약한 자의 삶을 깨닫고 이웃과 동료를 이해하고 서로 돕기를 나타내는 삶이 되었을 것 같다.

그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혼자 앉아서 마시지 못하는 쌩을 한 잔 앞에 놓고 거품을 후후 불며 홀짝이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버렸다. 갑자기 회비로 낸 5만 원이 아까워졌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과일이라도 사고 동네 쪼그랑 할머니 붕어빵이나 사들고 가면 마누라도 좋아했겠다.


- 넓은마을 조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