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나를 가르치는 삶의 스승
- 부끄러움을 아는 민족이 되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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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스컴에서는 연일 '적폐', '진실'이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요즘처럼 이 나라에 살면서 가치관의 혼란, 국가의 존재 여부에 대해 국민들이 고민해 본 때가 있었을까. 짧게는 9년, 아니 길게는 37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들의 가슴에 묻어둔 부끄럽고 참단한 일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요즈음 나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만드는 단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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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선 대학의 하루 하루는 내게는 그 자체가 설렘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터진 각종 시국 사건들과 연일 이어지는 데모 속에서 상아탑이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당시 교내에 걸린 5월 18일 남도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끔찍한 만행을 폭로한 사진전이었다. 그 날 이후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연일 최류탄에 눈물 흘리고 전경에 구타당하는 동료를 보면서도 내가 가질 수 있는 용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사실은 줄곧 내게 크나큰 짐으로 남아 있었다.
그 때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나는 장애 아동의 권익을 지키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내 모든 것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20여년간 나는 임대아파트 인근 복지관에서 빈민층 장애 영유아의 조기교육을 자원했고, 중증의 중복장애를 가진 시각장애 아동의 재활을 위해 줄곧 일해 왔다. 주변에서는 그러한 험한 일을 맡아 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나를 붙잡았던 것은 오래 전 가진 부채에 대한 작은 미안함도 한 몫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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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이 흘러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내조자로 정착하면서 내가 가졌던 초심도 점차 무뎌지게 되었고 소소한 세상일에 연연해하는 내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즈음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일이 생겼다.
지난 해 전국 방방곡곡을 밝힌 촛불 시민의물결과 그들의 한결같은 외침. 그것은 진실의 빛으로 정의를 되찾겠다는 30여년전 바로 그 목소리였다. 모든 변화는 나 자신의 솔선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30여년전의 진리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내게도 다시금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새 '지천명'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나이이건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 기술을 전해주기 위해 늦깎이 사이버대학생이 되었고, 인터넷을 통한 영어회화 강의도 새로 수강하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는 매스컴에서 행해지는 과거 정권의 만행에 대한 규명 작업을 '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재단하려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부의 과거 진실 규명 노력에 대한 지지가 7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소한 나는 지금의 사례들이 보복의 반복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나 자신, 아니 우리 국민들 모두가 과거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용서하며 새롭게 미래를 다잡겠다는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발로가 아닐까. 누구나 항상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다. 나는 우리 자식들에게 이러한 가치만은 꼭 전해주고 싶다.
- 송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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