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맹학교에서 보행교육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어

tosoony 2017. 8. 17. 16:43

  “대학교 캠퍼스 보행교육을 하면서 기본적인 보행교육이 안 돼 있는 학생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있더군요. 보행의 기초부터 가르쳐야 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로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보행교사 A 씨는 캠퍼스 보행교육을 마치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보행은 시각장애인의 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맹학교에서조차 보행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일선 교사들은 현재의 교육과정으로는 제대로 된 보행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규 교과에 보행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정규 교과에 ‘치료교육’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전담 치료교육 교사가 맹학교에서 보행과 시기능교육 등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으로 바뀌면서 치료교육 관련 규정이 삭제되고,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의 일부인 ‘치료지원’으로 대체됐다. 그러면서 치료교육은 2009년 초등 1, 2년 과정을 시작으로 2013년 모든 초·중·고등학교 과정으로 확대 폐지됐다.
  치료교육은 ‘장애로 인하여 발생한 결함을 보충함과 동시에 생활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심리치료, 언어치료, 물리치료, 작업치료, 보행훈련, 청능훈련 및 생활적응훈련 등의 교육활동’을 뜻한다. 그러나 8가지 영역을 한 교사가 담당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돼 폐지에 이르게 됐다. 이런 문제점에도 치료교육 교사가 보행을 담당했을 당시의 사정이 나았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보행교육은 ‘창의적 체험활동’의 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 등 네 가지 활동을 하도록 교육부에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교육부의 교육 방향 지침이 있기에 보행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맹학교 교사 B 씨는 “기본적인 수치상으로도 보행에 대한 교육이 줄었고, 방과 후 교육 등 이런저런 활동에서도 보행교육을 시행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치료교사 제도가 있었을 때는 명목상이라도 현재보다는 보행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C 씨도 “당시 졸업생들도 독립보행을 제대로 익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치료교사가 학생 한명 한명의 특성과 장단점 등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 보행이나 일상생활 교육의 연속성은 보장이 됐었다”고 말했다.
  현재 맹학교에서는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마련해 학생들의 보행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전문 보행교사를 초빙해 교육을 맡아서 하는 곳도 있고, 교사들이 보행교육을 받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곳도 있다. 초등학교는 일주일에 2~3시간, 중·고등학교는 1시간 이내에서만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보행교사 A 씨는 “교과에 보행이 없다고 하더라도 맹학교 교사라면 학생들에 대한 생활이나 보행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교사들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보행이라는 특수한 영역을 맹학교의 모든 교사가 익혀 가르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말한다. 교사마다 맡은 과목이나 학급의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과정에서 보행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러나 보행교육 과정 개설은 요원하다. 보행이 교육과정에 포함이 되려면 기초연구 과정만 해도 3년이 걸리고, 수업시수 배부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018년에는 보행교육과 관련한 ‘시각장애인과 자립생활’이라는 교과서가 배포될 예정이지만, 이 과목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이용해서 학습될 가능성이 크다.
  보행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건 교육과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장애인활동보조 제도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 B 씨는 “장애인활동보조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재활에 대한 욕구가 줄었고, 안내견 분양도 안 된다고 한다”며 “독립보행보다 활동보조인이나 심부름센터 차량 활용에만 더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팽배해 맹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받는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맹학교 구성원 자체의 변화도 원인이다. 맹학교에서 시각중복장애학생의 비율이 현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시각중복장애학생의 비율이 30%다. 교육 과정별로 유치원 62%, 초등학교 46%, 중학교 31%, 고등학교 17%로 저학년일수록 시각중복장애학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교육적 체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각중복장애학생의 보행교육이 시행될 리는 만무하다. 또한 중도 실명자가 늘어나면서 보행교육에 노출된 시간이 적은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맹학교에서 이뤄지는 보행교육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 D 씨는 “독립보행이 안 되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만큼 교과 속에서 보행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며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부분은 시각장애인복지관이나 단체에서 보완해줄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같이 독립보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사 B 씨는 “미국의 전문 보행교사 양성과정이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보행교사 양성과정도 좋은 시도지만, 사회적인 자격을 부여해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 D 씨는 “미국은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보행 사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케인을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도 제고되어야 할 사항”이라며 인식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 2017년 8월 1일자 '점자새소식'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