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40년 특수교사직 퇴임 이화순 전 대전맹학교 교장

tosoony 2016. 3. 15. 23:18

지난 2월19일 대전맹학교에서는 졸업식과 함께 뜻 깊은 또 하나의 행사가 마련됐다. 바로 39년 9개월의 특수교사직을 마감하는 이화순 대전맹학교 교장선생님(62)의 퇴임식이 거행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선생은 눈가에 눈물을 지으며 “내 곁에 맹학교 학생들이 있어줘서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모인 졸업생들과 맹학교 학생들도 떠나는 교장 선생님을 아쉬워하며 배웅했다. 1979년 스물다섯 살 앳된 모습의 이화순 교사는 대전맹학교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떼었다. 그리고 대전맹학교에서 교직을 마감했다. 대구 광명학교, 충남여고 대전혜광학교에서 7년여 근무했던 시간 외에는 오롯이 대전맹학교에서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햇수로 치면 32년여의 시간이었다.

이 선생은 대전맹학교에서 교사로서 교장으로서 재직하면서 자신이 얻은 것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보면서 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또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어요. 이러니 제가 행복하지 않았겠어요? ”

이 선생의 퇴임식에는 송미경 교사가 송별사를 낭독했다. 이 선생은 송 교사와의 특별한 인연을 들려준다. “송 선생은 공주사대 재학 중 시력을 잃은 친구예요. 그 후 맹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점자를 익혀 침신대와 우석대 대학원을 졸업했죠. 송 선생이 맹학교 재학시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담임인 저에게 건네는 거예요. 그때는 아이들 소풍 김밥은 선생님들이 말아주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송 선생의 엄마가 당시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던거라. 글쎄 생각을 해봐요. 대학교까지 갔던 딸이 눈이 멀어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는데다 자기는 유방암 환자인데 딸 담임선생님 김밥을 싸준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이 대목 쯤에서 이 선생은 목이 메어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 선생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송 선생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6개월 만에 점자를 떼었죠. 우석대 대학원에서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결국 교사로서의 꿈을 이뤘어요. 송 교사의 엄마는 돌아가셨고요. ”

이 선생은 자신은 대전 맹학교와 일반 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하면서 느낀 것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정안인 학생들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자기 옷을 스스로 빨아서 입고 다닙니다. 혼자서도 잘 다녀요. 한편 마음은 아프죠. 이 세상을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 자각했기에 할 수 있는 있었던 거니까요.” 그에 비해 정안인 학생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부모들이 앞장서서 뭔가를 해주려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이 선생이 맹학교 재직하면서 얻은 것이 또 하나 더 있다면 삶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앞이 보이지 않은 시각장애인들보다 멀쩡한 두 눈의 시력을 갖고 있는 정안인들이 불행감을 더 느끼는 이유는 뭘까? 지금 이 순간 행복감을 느끼지만 왜 1∼2분 후 그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까? 삶과 사람 그리고 행복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이 선생은 지난 2003년 원광디지털대학교 요가명상학과로 진학해 과정을 마쳤다. 그후 인도에 네 차례나 다녀오면서 삶과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행복도 연습이에요.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불행하다고 해요. 마음에 달린 거죠. 행복을 느끼는 것도 기술이에요. 그 기술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선생은 퇴임을 준비하면서 원도심에 ‘삶의 길 연구소’라는 간판을 건 사무실을 냈다.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행복한 삶을 돕고자 함이다. 이 선생의 제자사랑은 퇴임 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 대전시정소식 2016년 3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