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점자 규정 개정안

tosoony 2016. 2. 28. 12:22

요즘 시각장애인계의 최대 관심사는 점자 규정 개정이다. 넓은마을(시각장애인계 통신망) 게시판은 지난 1월 25일 점자규정 개정 주요 내용과 관련하여 의견수렴을 한다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의 게시글 이후, 엄청난 수의 글들이 이어졌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2월 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점자규정 개정안 공청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현행 점자 규정은 1997년에 제정된 이후 2006년에 개정됐다. 개정 이후에도 미비한 점이 꾸준히 제기되어 국립국어원에서는 2012년 점자 규정 개정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제2차 개정안 연구를 2012~2013년에 진행했고, 2015년 10월 ‘점자규범정비위원회’가 구성됐다. 점자규범정비위원회는 한글 및 외국어 분과 12명, 수학·과학·컴퓨터 분과 10명, 음악 분과 8명, 총 30명의 전문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시각장애인은 18명이다.

김영일 점자규범정비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점자규정 개정안의 기본 방향에 대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보편화’, ‘디지털 정보통신 환경에 적합하도록 하는 디지털화’, ‘국가 간 대체자료 공유와 활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화’, ‘어쩔 수 없는 점자의 한계는 있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일반 문자를 점자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통합화’, 네 가지를 들었다.

김호식 한글 및 외국어 분과위원장은 “최근 출판, 인쇄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점자와 묵자의 통합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나의 점형이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사용되어 발생하는 예외 규칙으로 인해 처음 점자를 배우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하고자 했으며, 현행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개정된 한글맞춤법의 문장부호를 점자에 반영하고자 했다”며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공청회에서 발표된 한글 점자 규정 개정안 내용 중 주요 쟁점은 ‘쌍시옷 받침’을 기존의 34점에서 3점, 3점으로 표기하고, 모음자에 모음 ‘예’가 이어 나올 때에는 그 사이에 붙임표를 적는 조항을 삭제하며, ‘성, 썽, 정, 쩡, 청’을 표기할 때 ‘영’ 약자를 ‘엉’ 약자로 사용하는 조항을 삭제하여 12456점은 ‘영’ 약자로만 사용하게 한다는 부분이다.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박옥련 겸임교수는 “현행 규정에서는 묵자의 사용 규칙이나 용례와 다르게, 점자 고유 표기 방법으로 규칙이 정해진 경우가 많아, 점자 사용자가 묵자 문서를 읽고 작성하는데 혼란이 있었다”며 “묵자와의 일치성이 확대된 것은 매우 타당한 개정”이라고 찬성의 뜻을 밝혔다.

서울맹학교 허병훈 교사도 “쌍시옷 받침 약자와 엉 약자 폐지에 동의한다. 점자를 처음 배우는 학습자에게 혼란을 주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점자가 익히기 어려운 문자 체계가 아니라 규칙이 명쾌한 문자 체계라는 인식을 줄 수 있으며, 점역 및 역점역의 자동화를 촉진하는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산점자도서관 안익태 사무국장은 “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쌍시옷을 두 칸으로 쓰게 된다면, 입력속도가 느려지고 잘못 읽는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쌍시옷 받침이 사용 빈도가 낮은 다른 약자였다면 이렇게까지 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묵자와의 통일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취지는 바람직하나, 사용 빈도가 낮은 ‘모음, 붙임표, 예’의 붙임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약자를 폐지하여 불편을 초래하는 일은 없기 바란다. 점자는 사용자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혼동을 가져오는 동일 점형 중복 사용과 예외 규정의 최소화로 점자 학습을 쉽게 하도록 한다는 개정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제한된 점형 사용에 있어 중복 사용은 불가피하며, ‘쌍시옷 받침’과 ‘영’의 개정은 점자의 예외적 효율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점자 사용자들의 의견은 반대쪽으로 쏠려있는 실정이다. 반대 의견에 의하면, 쌍시옷 받침과 성, 정, 청 약자 사용은 그 빈도수가 상당히 크므로 개정안대로 되면 사용자들의 불편은 명약관화하다고 한다. 점자의 가장 큰 약점은 부피와 읽기 속도이므로 약자를 늘리면 늘렸지, 줄이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점자개정안이 탁상공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개정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규정은 불편하지 않으면 되도록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약자는 줄이는 것보다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늘리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바꾸게 되면, 기존 점자책을 못 쓰게 되므로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라며 개정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찬성 의견에 의하면, 점자가 현재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위해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고, 누구든 점자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길이라면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점자는 실명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무조건 쉬워야 하며, 그 어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습득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에 대해 김 위원장은 “부피, 속도에서의 약점 극복에 대한 필요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점자는 사용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 정비, 교육, 점자 관련 전문가 양성, 디지털 기술 개발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것의 초석이 점자 규범 정비이다.”고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시각장애인 성인 20명과 학생 24명에게 개정안으로 실험을 한 결과, 읽기 속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며, “사용자들의 심리적 저항이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에 의하면, 묵자를 점자로 옮기는 것은 용이한데, 점자를 묵자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점자만의 특수성이 너무 많기 때문. 쌍시옷 받침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점자의 디지털화에 있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한다.

끝으로 김 위원장은 “기존의 규정으로는 디지털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변화하는 문자 환경에서 시각장애인들의 통합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점자도 변화해야 한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제정한 한글 점자가 처음 그대로 유지된 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자는 변화해 왔다. 우리의 점자가 유용한 문자가 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가 위원회 위원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다. 이 고민을 함께 나누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의 점자가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개정의 논의에 있어서는 그 취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개정을 준비하는 측에서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자칫 일방통행에서 빚어질 수 있는 실수와 혼란을 예방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사용자들은 개정 필요성에 대해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 관점에서의 검토와 제안을 함으로써 개정의 취지에 부합하는 합일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점자가 올바르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 점자새소식 2016년 2월15일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