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흰 베옷을 입는다.
베옷은 죄인이 입는 옷이다.
상주는 지팡이도 들고 문상객을 맞이한다.
죄인이니 자기를 벌해달라는 의미도있지만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지팡이에 의지해 버티는 것이다.
작가 이청준의 소설 축제는 죽음을 맞이한 가족이
어찌 이별하는지를 소재로한다.
죽음과 축제는 형용모순이지만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그래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니 축제로 받아들여지기도한다.
돌아가셨다는 말에는 태어나기 전 이미 있었던 곳이란 뜻이 담겨져있다.
태어나기 전의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이승에서의 고생이 끝났다는 뜻도 있다.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로 강이 사용되는 것은
고대신화에서도 수없이 사용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의 고통이 너무 심해 태어나기 전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단다.
이승에서의 고통이 끝남은 태어나기 전의 안온함과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본성의 문제일수도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고 마시고 싸우던 사람이
숨을 쉬는 행위가 멈췄다는 것으로 다시는 망자와 함께 할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최초이며 최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부모는 땅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 다는 말은 내리사랑이란 말의 뒷면일지 모른다.
생떼같은 자식이 수학여행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나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이성을 기대하는 것은 정상적이지않다.
왜 죽었는지 왜 죽어야만했는지 아무것도 알지를 못한다.
그 세월이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앞서 언급한 축제에는 상주의 지나친 슬픔을 경계하는 뜻도 내포한다.
떠들고 함께 있으며 슬픔을 차츰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이기도하다.
주검을 곁에두고 노래하고 술마시는 행위는 한편 패륜적으로 보이기도한다.
우리 말에 호상이란 말은 그 패륜적 행위가
단순패륜이 아닌 축제의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에동의한다는 뜻도있다.
그러나 함부로 호상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제 3자의 입장에서 호상이라 말할 죽음도 가족의 입장에서는 올곳이 슬픔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초인종을 누르고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거리며
집안으로 돌아올것같은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 잔인하다.
그들은 아직까지 어떤 일이 왜 어디서 어찌 발생했는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바가 없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모든 조사는 속속 거짓임이 드러나고있다.
어제의 말이 오늘 뒤집어지고 오전의 발표는
오후에 다른 사실에 묻혀버린다.
백번천번 양보해서 자식의 죽음을 통하여 한 몫 잡아보겠다는 마음이 있을수도 있다.
어차피 자식은 죽었으니 보상을 최대한 받겠다는 마음이 생길수 있음을
외면하거나 모른체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보상이나 배상은 마지막에 할 일이지 처음부터 할 일은 아니다.
있지도 않았던 요구사안이 마치 진실인것처럼
인터넷을 도배해버리고
생명을 걸고 벌이는 단식하는 사람옆에서 폭식투쟁 운운은 천박함을 넘어 인간의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짓거리를 당한지가 벌써 몇 달째인가!!
그런 환경에서라면 누구라도 온전한 마음을 갖기는 힘들다.
폭탄은 뇌관을 건드리면 터진다.
뇌관에 열을 가하기도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동작하게도 만들수있다.
채칵채칵 시간은 흘러가는데 왜 제정신 못차리는가하는 비난은
그래서 온당치않다.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진 지가 언제인지 기억은 하시는가?
자동차가 오가던 다리가 칼로 끊어낸 듯 무너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은 하시는가?
아, 삼풍, 성수라는 이름을 지금 떠올리셨다면
늘 가슴속에 삼풍과 성수라는 이름을 안고 지하나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있음도 알아야한다.
그게 언제일이냐고 언제까지 거기에 매몰될 것이냐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않다.
우리는 단순 사건이나 사태 또는 참사로 언급하지만
가족에게는 구체적이고 체험적 고통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내 가족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믿어라 믿는다 변치말자는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나 통용될 뿐이다.
믿게해야한다.
믿음을 주어야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고 치료할 마음이 생긴다.
정부도 사람의 조직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은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생기게해야한다.
아기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알아 웃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보호하며 자기를 아껴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방실방실 웃는것이다.
아기에게 엄마를 사랑하라고 일러줄 일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게하면 된다.
순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는 말의 속뜻은
그만큼 화를 속으로 꾹꾹 눌러왔다는 것이 아닐까?
곤히 잠든 아기를 툭툭 건드려보시라.
울음을 터트리고만다.
똥 싼놈이 화 내는것이 아니라
울고싶은데 뺨 때린 꼴이다.
세월호 비극을 바라보면서 몸서리쳐지는 것은 만약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이 나라는 우리를 어찌 대할까 하는 생각에서다.
대부분의 책임을 앞을 보지못하여서 벌어진 것이라
몰아갈 것은 자명하다.
돈도 없는 것들이 제주도를 왜 가냐고 경주나 가면되지 하는 말은
앞도 못보는 것들이 무슨 여행이야 집구석에 처박혀있지로 읽혀진다.
우리 사회는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여행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왜 돌아가지 못했는지 누가 그렇게 했는지 그 때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는
무엇을 하였으며 어찌 했는지에 대하여
알려고하지 않는다.
아니 알지말라고 한다.
알아서는 큰일이라도 나는 듯 행동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다더냐는 말은
왕후장상과 백성이 다른 삶을 살고있었다는 뜻이다.
그 문구가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먹혀든 원인에는
왕후장상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대접은 받고싶다는 마음이 들어있다.
우리는 왕후장상 같은 특별계급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당연하고 마땅한 그런 대접을 받고싶을 뿐이다.
다른나라 국민들이 그들의 국가로부터 받는 존중과 보호를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받고싶을 뿐이다.
돈이 없거나 권력이 없더라도 우리가 합의하여 만든 법의
보호를 받고싶을 뿐이다.
세금내고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온갖 명령에 복종하는
국민으로 그러한 기대를 갖는것이 지나친 것이라면
이미 국가가 아니거나 주인이 국민이란 헌법조항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술 취한 김에 갑질을 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비난은 그 갑질만큼 해야한다.
모든 형사범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처벌은 지은 죄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한다.
그것이 국가가 국선변호인제도를 두고있는 이유다.
설사 유족들이 더 궁핍하고 더 어려운 처지의 대리기사에게 갑질을 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진실요구에 흠결요소는 아니다.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마녀사냥은 그만 둘 일이다.
유족은 지고지순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요구가 그들의 지고지순함과 도덕적 완벽함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잃은 피해자로서 갖는 권리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들 유족은 특별계급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 누구라도 재수가 없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에서
함께 사는 이웃일뿐이다.
살아가는 기준을 재수에서 찾아야하는 것은 현대국가로서 함량미달이다.
유족들이 짱돌을 맞을 짓을 했다면 그만큼의 짱돌을 던질 일이다.
그들은 올바르게 살아보겠다고 세상을 등진 구도자도 아니고
진리를 찾겠다고 고민하는 철학자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의무도 그들에게는 없다.
영해내에서 수백명이 타고있는 배가 가라앉는 시간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래서 외국언론에 온갖 추잡한 추문으로 국가망신시키는 사람의
의무도 그들에게는 없다.
오늘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파파이스를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김어준은 단언하지 않는다.
그도 궁금해 할뿐이다.
그가 들려주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단지 평가할 부분은 그가 끊임없이 왜 라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전문가들중에는
지금 우리가 진실이라 알고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사실을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슬픈 것은 왜 그런 사실이 김어준이란 개인에게서 밝혀지는가 하는 것이다.
천 명에 가까운 변호사가 아무 이상없다고 말하는 법리가
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슬플 뿐이다.
유족들이 대리기사에게 갑질을 했다면 그 비난은 갑질만큼만 할 일이다.
그것이 유족들의 정당한 요구까지 싸잡아 매몰시킬 근거가 되어서는 않된다.
혹 앞으로 우리 시각장애인과 관련하여 발생할 어떠한 사건이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시각장애에 촛점이 맞춰져
진행되어서는 않되기 때문이다.
- 넓은마을에서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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