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교단

어느 도장가게 할아버지

tosoony 2012. 5. 30. 23:00

작년 어느 때였던가, 동사무소에 갖고 간 도장이 닳아서 쓸 수 없으니 다시 파오라는 말에 갑자기 어디서 도장을 새겨 올 수 있지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흔하게 명함과 도장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우리 주위에 있곤 했는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하나도 없더군요.
결국 구청이나 법원 근처에는 있지 않겠느냐는 말에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쪽에 있는 동구청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동구청 주변에조차 도장집이 하나 둘 문을 닫아 이제는 하나도 없다는 직원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더군요.
하긴 요즘같은 디지털, 사이버 세상에 아나로그 도장이라니~~~ ㅠㅠ
그러다 문득 같이 간 분이 근처 시계골목 쪽에서 본 것 같다는 말에 그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일 것 같지도 않은 허름한 작은 매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50년 전통~~ ***'

이라는 문구가 머리 위에 함께 걸린 도장 가게에는 한 초로의 노인이 앉아 계셨습니다.
80이 가까이 되어 보이는 외모에 틀니로 발음도 제대로 못내실 뿐 아니라 귀가 안들려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야 알아 들으시는 모습에 잠깐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허탕인가?~~~ ㅠㅠ'

하지만 내보인 제 한자이름과 도장을 대하자 엄청나게 손놀림이 빨라지는 그 분에게서 저는 그 무언의 '포스'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처음 그 분을 대하는 순간 가졌던 의심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물론 완성된 대추나무 도장은 하나의 작품이었구요...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업무.
퇴근 시간이 지나고서도 맥이 풀린 저와 동료 여선생님과 잠시 앉아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0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어느 책의 한 귀절에서 시작된 대화는 나 자신 오늘 무엇을 새롭게 준비하는지에 대한 반성아닌 반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나도 과연 퇴임 때가 될 때 나만의 일에 대한 포스를 얼마나 발산하고 있을까?
혹시 나는 이 순간 무언가 엉뚱한 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 주저 주저하면서 보낸 세월을 그 어느 순간 가슴을 치며 후회하지나 않을지 한참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로의 도장가게 어르신의 80평생은 어떠하셨을까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교직이라는 직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 분의 장인 정신과 변하지 않은 열정이 한껏 부러웠습니다.

비오는 날 밤에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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