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참사를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911 사태, 911 테러로도 불리우는 이 사건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성에 연속 자살 충돌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날 테러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실종 4972명에 사망 152명, 아메리칸 항공 AA11편 탑승 사망자 92명, 유나이티드 항공 UA175편 탑승 사망자 65명, 워싱턴 국방부에서 사망 또는 실종된 125명, 아메리칸 항공 AA77편 탑승 사망자 64명, 펜실베이니아주 유나이티드항공 UA93편 탑승 사망자 45명등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만 5,515명에 이릅니다. 실로 엄청난 테러요 참사였으며, 우리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기억될 또 하나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씨 911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2 004년 7월 개봉한 다큐먼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2001년 9월 세계를 희생자의 피로 얼룩지게 한 911 참사를 또 다른 각도로 조명하여, 새로운 사실에 대해 눈뜨게 해줍니다.
20세기 이후 세상은 더욱 더 극단적인 경쟁과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 경쟁과 이윤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가장 큰 주체로는, '총을든 달러'-'무장한 세계화'-'제국주의'-'미국'라는 등식을 통해 미국의 또 다른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야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미국에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PNAC)가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누구도 그것이 미국이 장차 유고슬라비아를,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를 공격하게 될 사악한 씨앗일 거라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결국 미국 국방비의 증액을 통해 3백만 고용인의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1만명에 달하는 로비스트와 브로커와 무기 밀매상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록히드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보잉, 노드롭 등 군수 사업자들은 이후 10년이상의 안정된 돈벌이 프로젝트가 약속되었습니다.
2000년, 프로젝트를 내놓은 핵심 멤버들은 드디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고, 화씨911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화는 부시 집안이 어떻게 미래의 철천지 원수처럼 되어버린 오사마 집안과 이전부터 깊은 내력을 맺어 왔는지 파헤침으로써, 외견 중동 테러리스트의 불장난과 같게만 보이는 911 참사의 이면에, 경쟁과 이윤 논리가 숨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참사 이전부터 미국은 단순한 애국법(테러방지법)을 통해 자신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테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단 한번도 명확한 정의를 내린 적은 없었습니다. 테러가 무어냐고 하면 그저 ‘악의 축’이라 하고, 그러면 악의 축이 무어냐고 하면 또 테러 집단이라 답하는 단순한 논리를 통해 가상의 테러 위협을 현실의 테러로 둔갑시키면서 미국 시민으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위력과 영향이 미비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인류 전체의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911 참사 이후 미국은 국민 대다수의 원수로 만든 이라크를 침공하게 되는데, 이 때 침공의 사유는 ‘대량 살상무기의 확실한 존재’였습니다. 미국은 부시 집권 초기에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가질만한 능력이 안되는 나라라고 호언했던 바를 편하게 잊어버립니다.1991년 걸프전 이후 1998년까지 250여차례나 진행된 현장조사로도 발견 안된 무기가, 그리고 이라크 전쟁 발발 1년전부터 유엔 무기 사찰단이 샅샅이 뒤져도 안나온 무기가, 침공을 얼마 앞둔 시점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한숨짓게 됩니다.
어쨌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불과 40일만에 종전을 선언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3년 215와 320 국제 반전운동은 이같은 미국의 막무가내식 질주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2월 15일에는 1천만명이상이 동시에 참가하는 반전 시위가 펼쳐졌으며, 유럽 사회 포럼의 제안과 세계 사회 포럼의 결의로 진행된 반전 시위는 부시와 블레어의 정치적 패배까지 예감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화씨 911을 통해 바라본 이라크의 참혹한 현장은 세계가 ‘그래도 911 사태의 뉴욕보다 덜한 수준이다’라고는 차마 말할수 없게 만듭니다. 민가 습격, 알라신에 대한 어머니의 호소, 불에 탄 시체, 포로 학대, 그리고 피범벅이 된 아동들…특히 미국이 보여준 포로 수용소의 낯뜨거운 모습은 미국의 이중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 화씨911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애국적인 한 군인 집안의 어머니가, 전쟁터에 보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반전 시위대를 혐오하던 상황에서 종국엔 아들을 잃고 <명분없는 애국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가>를 절규하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겪는 수많은 변화에 본질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으로만 대처했을 때,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되는가!
그렇습니다. 911 사태, 911 테러로도 불리우는 이 사건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성에 연속 자살 충돌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날 테러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실종 4972명에 사망 152명, 아메리칸 항공 AA11편 탑승 사망자 92명, 유나이티드 항공 UA175편 탑승 사망자 65명, 워싱턴 국방부에서 사망 또는 실종된 125명, 아메리칸 항공 AA77편 탑승 사망자 64명, 펜실베이니아주 유나이티드항공 UA93편 탑승 사망자 45명등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만 5,515명에 이릅니다. 실로 엄청난 테러요 참사였으며, 우리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기억될 또 하나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씨 911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2 004년 7월 개봉한 다큐먼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2001년 9월 세계를 희생자의 피로 얼룩지게 한 911 참사를 또 다른 각도로 조명하여, 새로운 사실에 대해 눈뜨게 해줍니다.
20세기 이후 세상은 더욱 더 극단적인 경쟁과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 경쟁과 이윤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가장 큰 주체로는, '총을든 달러'-'무장한 세계화'-'제국주의'-'미국'라는 등식을 통해 미국의 또 다른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야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미국에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PNAC)가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누구도 그것이 미국이 장차 유고슬라비아를,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를 공격하게 될 사악한 씨앗일 거라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결국 미국 국방비의 증액을 통해 3백만 고용인의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1만명에 달하는 로비스트와 브로커와 무기 밀매상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록히드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보잉, 노드롭 등 군수 사업자들은 이후 10년이상의 안정된 돈벌이 프로젝트가 약속되었습니다.
2000년, 프로젝트를 내놓은 핵심 멤버들은 드디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고, 화씨911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화는 부시 집안이 어떻게 미래의 철천지 원수처럼 되어버린 오사마 집안과 이전부터 깊은 내력을 맺어 왔는지 파헤침으로써, 외견 중동 테러리스트의 불장난과 같게만 보이는 911 참사의 이면에, 경쟁과 이윤 논리가 숨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참사 이전부터 미국은 단순한 애국법(테러방지법)을 통해 자신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테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단 한번도 명확한 정의를 내린 적은 없었습니다. 테러가 무어냐고 하면 그저 ‘악의 축’이라 하고, 그러면 악의 축이 무어냐고 하면 또 테러 집단이라 답하는 단순한 논리를 통해 가상의 테러 위협을 현실의 테러로 둔갑시키면서 미국 시민으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위력과 영향이 미비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인류 전체의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911 참사 이후 미국은 국민 대다수의 원수로 만든 이라크를 침공하게 되는데, 이 때 침공의 사유는 ‘대량 살상무기의 확실한 존재’였습니다. 미국은 부시 집권 초기에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가질만한 능력이 안되는 나라라고 호언했던 바를 편하게 잊어버립니다.1991년 걸프전 이후 1998년까지 250여차례나 진행된 현장조사로도 발견 안된 무기가, 그리고 이라크 전쟁 발발 1년전부터 유엔 무기 사찰단이 샅샅이 뒤져도 안나온 무기가, 침공을 얼마 앞둔 시점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한숨짓게 됩니다.
어쨌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불과 40일만에 종전을 선언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3년 215와 320 국제 반전운동은 이같은 미국의 막무가내식 질주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2월 15일에는 1천만명이상이 동시에 참가하는 반전 시위가 펼쳐졌으며, 유럽 사회 포럼의 제안과 세계 사회 포럼의 결의로 진행된 반전 시위는 부시와 블레어의 정치적 패배까지 예감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화씨 911을 통해 바라본 이라크의 참혹한 현장은 세계가 ‘그래도 911 사태의 뉴욕보다 덜한 수준이다’라고는 차마 말할수 없게 만듭니다. 민가 습격, 알라신에 대한 어머니의 호소, 불에 탄 시체, 포로 학대, 그리고 피범벅이 된 아동들…특히 미국이 보여준 포로 수용소의 낯뜨거운 모습은 미국의 이중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 화씨911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애국적인 한 군인 집안의 어머니가, 전쟁터에 보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반전 시위대를 혐오하던 상황에서 종국엔 아들을 잃고 <명분없는 애국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가>를 절규하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겪는 수많은 변화에 본질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으로만 대처했을 때,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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