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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돌리기

tosoony 2005. 4. 7. 16:06

                                 수건 돌리기

  * 200년

 

아내의 직장이 멀어진 뒤로 아침마다 두 아이의 아침 식사 뒷처리와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큰 아이 학교 준비물 확인에 마지막으로 둘째 녀석을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올려주고 난 후 필자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수화기를 드는 것이다.

  거리는 가깝지만 마땅한 카풀 동료 직원이 없는 탓에 매일같이 호출택시를 이용한

지도 어느덧 6년 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한결같이 나의 눈과 발이 되어 준 수많은

 기사님들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그 중에서도 지금껏 필자의 마음 한 구석에 기억되고 있는 한 분을

적어야할 것 같다.

  p호출택시 소속으로 해병대 출신이며 이름도 모른 채 '513'이라는 호출번호와

목소리로만 기억되는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 전이었다. 그 날도 허겁지겁

아이들을 보내느라 시간에 쫓겨 서둘러 올라탄 택시속에서 그 분은 유독 나의

사정을 궁금해하셨다. 쾌활한 목소리에 모든 일을 신앙속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하시던 그 분을 만난 다음 날 부터 나는 그 513번의 아저씨를 유독 자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치던 한참 뒤에야 나는 그것이 그

분이 나를 태우기 위하여 비슷한 시간에 우리 동네 주위를 맴돌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출 시간이 늦을 때면, "오늘은 애들이 말을 잘 안들었나보지?"라고 껄껄

웃으시며 엑셀을 밟던 그 분이 내게는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그 분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당신의 표현대로

인연이 닿지 않는가보다라고 생각하며 하루 이틀 지내던 것이 한 달이 되고

여름방학에 접어들게 되어 호출을 한동안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개학이 되어 다시 일상의 분주한 출근 전쟁 속에서 호출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또 다른 낯익은 기사 분이 문득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전까지 효동 콜 잘 받던 친구가 이제 없어서 섭섭하겠네."

  "없다니요?"

  잊었던 반가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몰랐어? 그 사람 지난 달에 저 세상으로 갔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처럼 웃으며 나를

기다려주던 그 분의 죽음은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췌장암은 잘 모르잖아. 끝까지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하더니만."

  "우리가 장례끝까지 함께 했는데, 아 글쎄 그 날 보니까 그 집 큰아들이

장애자더라구. 쯔쯤 불쌍한 사람."

 

  어릴 적 소풍이나 야외에서 즐겨 하던 놀이 중에 '수건 돌리기'라는 것이 있었다.

정해진 노래가 끝날 때까지 옆 사람에게 수건을 넘겨주지 않으면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벌칙을 당하게 된다는 수건 돌리기는 이제 단순한 놀이로 요즘 젊은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유형무형의 사랑을 받곤 한다. 특히

장애를 가진 우리들에게 행해지는 이웃의 희생과 사랑을 우리는 간혹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흘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랑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나 혼자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또다른 그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건네줄 때 빛이 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삶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수건 돌리기를 하는 우리들은 이 시간에도 또다른 나보다 힘든 이들에게

사랑의 수건을 돌려야 한다. 내 손에 사랑의 수건이 쥐어진지도 모른 채 삶이라는

노래가락에 푹 빠져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지.

  내 손에 쥐어진 이 많은 사랑들을 누구에게 건네줄지, 필자는 오늘도 조바심을

내며 후회만 하는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