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미국 교사 연수 방문기

tosoony 2012. 4. 2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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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료교사 문성준


  흰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던 지난겨울, 1월 17일부터 27일까지 정인욱 복지재단의 주선으로 미국 교사 연수 프로그램(East coast tour and training)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어 미국 시각장애 학교와 기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연수는 총 9박 10일로 미국 동부의 주요 맹학교와 시각장애 기관 등을 견학하는 일정으로, 퍼킨스 맹학교와 오버브룩 맹학교 등의 맹학교 2곳, 캐롤센터, 미국 시각장애인 연합회(NFB), 뉴욕 라이트하우스, 헬렌켈러센터, Seeing Eye(안내견학교) 등의 재활기관 5곳, RFB&D, 전국점자도서관(NBP) 등의 시각장애 도서관 2곳 등 총 9곳을 돌아보는 다소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 퍼킨스 맹학교, 오버브룩 맹학교

  1) 시설

  - 퍼킨스 맹학교: 역사에 걸맞게 3만여평의 캠퍼스와 400명 가까운 교직원들이 200여명의 중증 중복 시각장애 학생을 교육하고 있으며, 일반 통합학급에서 주말이나 여름방학을 이용해 단기(2주, 5주 등)로 학교를 방문해 점자, 컴퓨터와 일상생활 등을 학습하고 돌아가는 방문 프로그램(Outreach Program)과 저시력 학생을 위한 진단 검사, 처방 서비스 및 전 세계 시각 전문인 양성을 위한 국제 리더쉽 전문가 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음

  - 오버브룩 맹학교: 퍼킨스보다는 적은 규모이나 퍼킨스 맹학교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세계 시각장애 학생을 1년간 무료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음(본교 윤지경, 윤석원 동문 참가) 그밖에 중증 시각중복장애 아동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전용 수영장을 개관 운영하고 있음

  2) 특징

  - 퍼킨스 맹학교와 오버브룩 맹학교 모두 기숙사에는 통학이 어려운 중증 시각장애 학생이 소규모로 기숙을 하고 있으며, 전문 간호사들이 24시간 상주하여 개별적으로 투약이나 문제행동을 처리하고 있었음

  - 교육비는 학생 1인당 1년 최소 5백만원에서 2억5천만원까지 소요되며 전액 학생이 거주하는 주정부 산하의 교육청에서 맹학교 측에 지원함으로써 학생에게는 전혀 재정 부담이 주어지지 않음

  - 중증 아동의 수업에는 간호사와 보조원들이 함께 교실에 입실하여 수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복 시각장애 아동의 의사소통을 위한 토털 컴뉴니케이션용 공학기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


  2. 시각장애 복지기관

  1) 시설

  - 캐롤센터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규모와 서비스를 자랑하는 시각장애 재활기관으로 유아에서부터 중도 실명자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

  - 라이트하우스는 영유아와 학령기를 넘어선 중도 실명자를 위한 전국적인 재활기관으로 특히 저시력인을 위한 전문 의사가 상주하여 진단에서 처방에까지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함

  - 안내견학교인 Seeing Eye에서는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대여가 아닌   완전양도를 하고 있었으며, 시각장애인의 활동영역에 맞도록 개인별 안내견  분양과 사후 서비스를 제공함

  -헬렌켈러센터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시각장애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미국내 맹농인들을 위해 실제적인 재활과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음

  2) 특징

  - 중도 실명인의 재활의 경우 실명하기 이전의 직업을 되찾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실제로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은 원래 직업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고, 그에 필요한 보행에서부터 공학기기 제공까지 성공적인 재활 서비스를 운영 중에 있음

  - 직업을 얻지 않고 연금을 받는(약 50만원 정도)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단말기를 포함한 각종 공학기기를 일체 지원하지 않으며 직업을 얻은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도 업무 성격에 맞는 기기만을 무상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


  3. 도서관

  1) 시설

  - RFB&D는 학습에 필요한 녹음 도서를 주로 제작하는 곳으로 낭독자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여 교육과 녹음을 시키고 있으며, 최근 데이지와 cd및 인터넷 소리도서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음

  - NBP에서는 미국내 점자도서를 주로 제작하고 있으며, 국가 공인시험 등의 문제지를 주로 출제하고 있음

  2) 특징

  - RFB&D에서는 전국망의 콜센터를 운영하여 시각장애인의 요구가 있을 경우 전국에 흩어진 도서를 구해주거나 직접 녹음하여 빠른 시간에 제공하고 있음

  - NBP에서는 bana 규정과 네미스코드를 이용하여 시각장애인이 대학이나 박사과정 등 어떠한 전문과목이라도 학습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전문 점자를 개발하고 원활하게 점역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음


  4. 전체적인 소감

  이번 연수는 단순한 견학이나 시설물 비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맹학교 교장이나 해당 담당자와 함께 직접 토론하고 정보를 나누는 시스템으로 운영함으로써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며, 일부는 그간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른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시설이나 장비 등의 하드웨어에서는 우리나라가 굳이 벤치마킹할 것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퍼킨스 맹학교나 오버브룩 맹학교의 실내 시설이나 장비들은 우리 학교보다 대체로 낡거나 오래된 경우도 많았으며, 미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한소네는 갖고 싶어하는 부러운 기기로 일부 주정부에서는 재정 문제로 한소네(미국명 브레일센스)보다 값싼 기기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한 유명하다는 NBP에서는 교정을 위한 컴퓨터에 3.5인치 플로피가 달려있었고, 40년이 넘은 점자프린터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명한 캐롤센터와 NFB에서는 우리나라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생활용구실에서 제작한 흰지팡이가 제일 인기있는 품목으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미국내 고질적인 교사에 대한 낮은 처우로 특수교사나 보행교사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학교나 기관이 많다는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둘째, 시각장애인의 직종이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 자신의 관심사이기도 한 탓에 재활기관 방문 때마다 그곳 시각장애인의 인기있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자주 질문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어이없다거나 왜 아시아 사람들은 매번 그런 이상한 질문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받고 적이 당황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우리의 안마와 같이 일단 실명하면 떠올리는 보장된 직종은 없지만 실명전 직업을 되찾으려 하거나 새로운 직종을 찾아갈 때 부딪치는 장애물이 거의 없이 대부분 의욕만 있으면 모두 취업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러한 취업 시스템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장애를 바라보는 철학과 가치관이 달랐습니다.

  돌아보는 모든 학교와 기관에서 그들이 수없이 반복하는 용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독립심'이었습니다. 모든 학교와 기관에서는 점자블록이나 음향유도기가 일체 없었고 재활기관에서는 점자정보단말기나 고가의 공학기기를 취업을 유지하는 시각장애인에게 한해 아주 제한적으로 배부했으며, 우리의 활동보조인이나 직업보조인 시스템을 언급하자 놀랍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서비스와 직업은 독립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제공이 되었으며, 제일 먼저 독립보행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 때로는 모질게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고, 큰 땅덩어리에 모두 점자블록을 깔 수 없는 바에야 그것이 없는 환경에서 재활훈련을 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우리나라처럼 획일적으로 고가의 단말기를 나누어 주거나 무제한적으로 활동보조인을 쓰는데 재정을 지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퍼킨스 맹학교에서는 중증의 시각장애 아동에 대한 발견이나 개별화 교육이 교사 자신만의 임의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이 아닌 정교하게 짜여진 시스템으로 운영되었으며, 4~5명의 행정 직원이 우리가 하는 소위 말하는 잡무를 아무 말 없이 모두 처리해내고 있음으로써 IEP에 많은 시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라이트하우스와 오버브룩 맹학교에서 그들은 비록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확대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1시간 가까이 다양한 검사와 처방 시스템을 통해 전문화된 평가와 배치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한소네나 확대독서기 배부는 한국에서처럼 한번 뿌리고 나서 전혀 관리가 안 되는 방식이 아니라 배부 대상을 엄격히 평가한 후 주어졌으며, 활동보조나 직업보조인은 시각장애인이 취업을 한 후 집에서 직장까지 이동하거나 업무를 보는데 익숙할 때가 되면 곧바로 끊어버렸습니다. 또한 길거리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제게 도움을 주고 지나갔으며, 식당에서 점자 메뉴판을 달라하자 대부분 제게 갖다 주었습니다.

  이처럼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에 느리고 정보화와 하드웨어 개발에 둔한 것 같은 그들이었지만 모든 과정 내에는 잘 짜여진 시스템이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지금의 그들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연수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연수에서는 바쁜 견학과 이동 중간 중간 미국 내 관광과 문화 체험을 통해 미국인들의 외면이 아닌 그들의 속살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짧은 일정과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 정인욱 복지재단과 여러 관계자님들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저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들이 연수를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2011년 대전맹학교 교지 '빛이 있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