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어느 물지게꾼이 있었다. 그는 긴 막대에 2개의 커다란 물병을 걸고 물을 옮기는 일을 했다. 매일 아침 강에서 물을 길어 주인집까지 먼 길을 걸어 다녀야 했지만,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젊은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물병을 짊어지고 주인집에 도착한 물지게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왼쪽 물병의 물이 절반이나 줄어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병에 금이 가 있어 그리로 물이 샌 것이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리 조심을 해도 왼쪽 물병에서는 계속 물이 새어 나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금이 간 물병은 물지게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매일같이 열심히 물을 긷는 당신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제 옆구리를 좀 보세요. 이렇게 금이 가 있으니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그만 저를 부수어 버리세요.”
물병의 말을 듣던 물지게꾼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없으면 그나마 절반의 물도 길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고는 물지게꾼은 계속 금이 간 물병을 막대에 걸고 물을 길어 날랐다.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물을 가득 채운 오른쪽 물병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다. 반면 금이 간 왼쪽 물병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지게꾼이 힘들게 일하는데도 물을 절반밖에 나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왼쪽 물병은 물지게꾼에게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변변치 못한 저 때문에 당신의 수고가 쓸모없게 되다니요. 저는 정말이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존재예요.”
왼쪽 물병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물지게꾼은 갑자기 두 물병을 짊어지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매일 지나다니는 길을 내려다보면서 금이 간 물병에게 물었다.
“저길 좀 봐. 어느 쪽에 꽃이 피었지?”
“제가 지나온 쪽에 피었네요.”
왼쪽 물병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네가 지나온 쪽에 꽃이 피었구나.”
물지게꾼은 물병의 말을 되풀이라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왼쪽 물병은 물지게꾼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병은 더 큰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그 후에도 계속 왼쪽 물병은 물을 옮기는 데 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왼쪽 물병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전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요. 제발 새 물병으로 바꾸세요, 네?”
이번에도 물지게꾼은 묵묵히 물병을 짊어지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저 아래를 보렴. 꽃이 어느 쪽에 피어 있지?”
“제가 지나온 쪽에 피었다고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그래, 네가 지나온 쪽에 꽃이 피었어. 왼쪽에만 피어 있지. 저 꽃들은 바로 네가 피운 거야.”
“...”
왼쪽 물병이 어리둥절해하자 물지게꾼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금이 간 널 일부러 버리지 않았단다. 오히려 금이 간 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 마침 이곳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았어. 꽃을 한 번 피우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그런데 너라면 물을 길어 나르는 동안 땅에 적당히 물을 뿌려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그럼 그 길을 따라 예쁜 꽃들이 필 테고, 당연히 주인님도 기뻐하시지 않겠니? 그래서 먼저 길에 꽃씨를 뿌렸단다.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 그 꽃씨에 물을 주었던 거야. 덕분에 난 지난 2년 동안 주인님께 물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도 바칠 수 있었어. 주인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이건 모두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란다.”
금이 간 물병은 자신이 늘 다니던 길 왼쪽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길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물병은 감동이 밀려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가꾸는 데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쓰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오랫동안 “난 안 돼”라고 생각하며 시름에 잠겨 있던 스스로가 한심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이내 이토록 멋진 꽃을 피운 자신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때 오른쪽 물병이 입을 열었다.
“나는 너처럼 물을 뿌릴 수 없어. 당연히 꽃도 피울 수 없지. 그동안 물을 흘리지 않는 나야말로 완전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능력이 없었던 거야. 너에게 그런 위대한 능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단다.”
- 스즈키 히데코 수녀의 '힘들 땐 그냥 울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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