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800억 원이 넘는 개발비가 들어간 4세대 지능형 나이스가 몇 시간 후면 정식 개통한다.
나이스는 전국 유·초·중·고는 물론 대입 업무에도 활용되는 초대형 시스템으로 학생의 성적을 포함해서 생활기록부를 생성, 편집, 저장, 전송, 발급하는 전국 단위 통합 시스템이다.
학생에 관련된 모든 학교생활기록뿐 아니라 교원능력개발평가와 교직원의 복무 기록도 모두 이 나이스에 저장된다.
580만 학생과 50만 명이 넘는 교직원에 관한 주요 정보가 들어가는 서비스이니 전 국민의 10% 이상의 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정보가 이 시스템을 통해 관리된다는 말이 전혀 과언이 아니다.
모든 소프트웨어가 다 그렇지만 이 정도 규모의 정부 개발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한국형웹콘텐츠접근성지침을 준수하여야 한다.
장교조는 2021년 중순에 4세대 나이스 개발을 위한 분석·설계가 시작된 단계에서부터 시스템 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에 새로운 시스템의 웹접근성 준수를 요구하였고, 이후에 2년 동안 자문단 구성을 비롯해서 개발 마지막 단계인 테스트 및 유지보수 모니터링까지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교무업무 시스템 부문 개발이 한창 이뤄졌던 2022년 8월부터 2023년 3월까지 7개월 동안은 시스템 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공백으로 남아 있다.
해당 시기에 웹접근성 자문단이 운영되긴 했지만 자문단에 참여한 선생님들에게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가거나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스템 개발을 주관하는 KERIS조차도 이 시기에는 개발되는 어떠한 화면도 보지 못해서 자문단에 제시할 것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시스템 개발의 핵심인 시스템 구연 단계가 모두 종료된 후인 2023년 3월 말에서야 장교조는 물론 자문단 교사들도 시스템 개발이 모두 완료되었다는 사실과 6월 21일에 4세대 나이스가 개통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 KERIS 담당자가 바뀌어서 진행사항을 파악하는 데 더 애를 먹었다.
뿐만 아니라 워낙 방대한 스케일의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이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기본적 배경지식 없이는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4월에는 모든 교사에게 베타 서비스가 오픈되었고, 일부 선생님들은 먼저 들어가서 써 보기도 했지만 어떠한 데이터도 없어서 실제로 테스트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3월 중순부터 약 세 달 동안 이 문제를 파고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요구할 자료와 주장을 정리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관련 지침은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 행정절차, 웹접근성의 실질적 적용 사례에 관하여 이해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읽고, 듣고,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눴다.
나이스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개발자들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프트웨어 리뷰들과 댓글들도 찾아서 읽었다.
3월에는 장교조를 포함해 KERIS에서 공식적으로 위촉된 웹접근성자문단, 한국시각장애교사회, 한국이료교육학회와 공동대응그룹을 구성하여 정보를 공유할 틀을 만들었고, 4월에는 기술적으로, 행정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찾아내고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주장 내용을 정리했다.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육부와 KERIS에 공문을 보내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사 취재 요청과 국회를 통한 자료 요구 요청도 시작했다.
그 결과, 6월에 뒤늦게 나이스 개발업체가 시각장애 보조공학기기 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KERIS에서 자문단 대상 설명회를 처음으로 개최하는 등 웹접근성 개선을 위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통일이 6월 21일인데 정작 웹접근성 관련 핵심 작업이 6월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개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비록 개발 전에 시스템 분석 및 설계 단계에 웹접근성 내용이 들어가게 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연하는 과정을 완전히 놓친 것이 너무나 아쉽다.
개통을 3주 남겨놓고 이제서야 개발단 차원의 웹접근성 업무가 시작되었으니 개통하자마자 웹접근성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통 후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책임을 묻고 4세대 나이스가 현장에 완전히 안착되기까지 웹접근성 개선 작업이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관여하고 요구할 생각이다.
최소한 학년 말 업무가 이뤄지는 올해 말까지는 계속해서 이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 많은 일을 나 혼자 할 수도 없고,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장교조 혼자 감당하기도 벅차다.
이미 장교조 안팎의 많은 선생님들이 도와주고 계시고 민주당의 강민정 의원님, 카카오의 김혜일 DAO(Digital Accessibility Officer,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님을 비롯해서 외부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분이 많다.
바라건대, 4세대 나이스 개발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의 웹접근성 적용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으면 좋겠다.
웹(콘텐츠)접근성은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세계적 표준이 존재하는 매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다.
우리나라에도 관련 내용과 지치침이 법제화되어 있고 관련 업체와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웹접근성지침은 1990년대에 W3C에서 처음 고안될 때부터 미래 기술까지 수용할 수 있게 포괄적으로 작성되었고 현재는 메타버스, 인공지능, 음성 기술에 관한 접근성지침을 개발하는 워킹그룹까지 존재한다.
웹의 범위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웹접근성이 일부 웹사이트의 접근성에만 적용된다고 보는 경향이 매우 짙다.
당장 내가 쓰는 나이스부터 그런 편협한 시각으로 웹접근성 작업을 하게 내버려둘 순 없다.
4세대 나이스를 시작으로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 교육 현장에 디지털 기술이 늘어날수록 웹접근성 전장도 함께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술이 장애인교원과 장애학생에게 장벽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사회도 더욱 포용적으로 바뀔 것이다.
- 김헌용(장애인 교원 노조 위원장) 페이스북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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